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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이종철

『까대기』

작가 : 이종철
출판사 : 보리
출간일 : 2019년 5월 13일
면수 : 284쪽
판형 : 153x225mm
ISBN : 9791163140399

이종철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생계를 위해 6년 동안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인 ‘까대기’를 했다. 그때 기록한 이야기들을 만화 『까대기』로 만들었다. 펜화로 그린 어린이 창작 만화 『바다 아이 창대』(모두 3권)의 그림 작가로 참여했다.

오랫동안 숙성한 까대기 이야

 

작가 이종철은 짐을 화물차에서 싣고 내리는 ‘까대기’라는 아르바이트를 6년간 했던 경험을 이 작품에 녹여냈다. 전체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 후, 전반부에 12개, 후반부에 11개의 에피소드를 배치하고, 연대기적으로 서술한다. ‘까대기?’에서 시작해서 ‘까대기’라는 에피소드로 끝난다는 점만 보아도 작품 전체의 구조적 완결성을 엿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서술을 끌고 가는 사람은 주인공인 ‘이바다’로 통일성을 보장하지만, 종종 주변의 다양한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하게 만듦으로써 내용의 포괄성을 확보한다. 까대기 아르바이트생들, 업무로서 까대기를 하는 사람들, 택배 주변의 다양한 직무를 하는 사람들, 예술가를 지향하는 지인들의 삶 등을 만날 수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파손주의」는 작가의 시선과 스타일을 아주 잘 드러낸다. 일주일쯤 하다 보니 이제 슬슬 몸에 익었다고 말하려다가 또 지각이라 뛰어나간다. 밤늦게까지 원고 작업을 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아침이 버겁다. 지점장에게 잔소리 듣고 작업을 시작하는 이바다에게 우연히 ‘파손주의’라고 쓴 택배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거대한 택배의 벽에, 각 박스마다 당일배송, 긴급배송, 하적금지, 던지면 깨져요, 신선식품, 기사님 고맙습니다 등의 글이 보인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파손주의’라는 커다란 테이블을 들고 있는 바다의 입에서 “윽! 내 몸이 먼저 부서지겠다”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쉬는 시간, 같이 미술학원 다녔던, 서울에서 취업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온다. 오늘 만나기로 해서인가, 하필이면 커다란 택배 박스 위에 놓여 있던 작은 알찬 택배가 얼굴 위에 떨어진다. 퉁퉁 부은 눈을 하고 그녀를 만났지만, 반가움도 잠시, 거의 야근이라는 그녀는 책상 위에 엎드려 십 분만 자겠다고 말한다. 일어나서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 하는 그녀를 배웅하고 버스를 탔지만, 버스에서 급하게 내려 허겁지겁 뛰어가는 대리기사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어 등장하는 버스의 뒷모습은 다음 날 아침 일찍 뛰어가는 자신의 옆모습으로 이어진다. 두 칸을 지나며 ‘모두들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입니다’라는 이바다의 독백이 흐른다.
그의 말대로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몸도 마음도 너무 쉽게 파손될 수 있는 시공간에 놓여 있다. 까대기 아르바이트생들은 대부분 곧바로, 휴식 시간에, 또는 하루만 버티고 도망간다. 택배기사들도 마찬가지로, 원체 업무가 힘겹다 보니 조금만 더 나은 조건이 있어도 다른 곳으로 쉽게 옮긴다. 그래서 생긴 문화가 서로 이름을 묻지 않는다는 것.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얼굴을 맞대고 일해도 서로 알 필요가 없는 사이들.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얼굴을 알고 있어도 굳이 이름을 외우려고 하지 않는, 이름 없는 사람이 엄청 많다.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가 받는 각종 서비스 제공자 중 이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위아저씨도, 경비아저씨도, 미화원 아줌마도, 식당이나 카페 서버들도, 딱히 얼굴과 이름을 익히려고 하지 않는다. 너무나 익숙해진 이 무관심의 일상화는 캠페인으로만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의 가장 커다란 장점은 담담함이다. 만약 까대기 경험을 통해서 본 택배와 그 속의 사람들과 시스템에 대한 분노만 쏟아냈더라면, 아무리 정확한 지적들이라도 답답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으니까. 작가는 오랫동안 까대기를 하면서, 작품화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되새김질을 했던 걸까. 힘겨운 노동들 사이, 반짝이는 작은 마음 씀씀이들이 버팀목을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림체 역시 마찬가지로 작품의 내용적 스타일에 맞춘 것처럼 간단하고 담백한 선들로 묘사하고 있다. 담담하기에 호소력이 더 크다. 비가 오면 택배기사들은 자신의 몸 대신 택배물을 보호한다. 비를 맞고 시골에서 올라온 야채들을 운반해준 기사에게 할머니는 따뜻한 음료를 내민다. 가을철 폭주하는 농산물 택배의 물량 속에서 현장에서는 곡소리가 난다. 이바다는 두 번 다시 택배가 늦게 온다고 투덜대지 말라고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다짐시킨다.

 

글: 한상정 Han Sang-jung
인천대 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