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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김혜순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신발을 벗고 난간 위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면 소매 속에서 깃털이 삐져나오는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뺨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 - 「새의 시집」 부분

『날개 환상통』

작가 : 김혜순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간일 : 2019년 3월 31일
면수 : 312쪽
판형 : 128x205mm
ISBN : 9788932035307

김혜순

1955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어느 별의 지옥』,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한 잔의 붉은 거울』, 『죽음의 자서전』,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나)』, 『여성, 시하다』 등을 출간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문학상, 올해의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이형기문학상,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새하는 시간

 

멈출 수 없는 지속의 시간

 

“내가 계속 적지 않으면 떨어져버리는 새를 생각했다”(「작별의 공동체」, 193쪽).

그러므로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이 지속의 시간이 시쓰기의 시간이다. 김혜순의 용어로 하면 ‘시-하기’의 시간. 이 지속의 시간은 현재만으로 고동치는 시간이다. 과거를 추억하거나 미래를 계획하는 그런 관념적이고 인간적인 시계장치 따위는 가동되지 않는다. 오로지 ‘시-하기’의 현재만으로 숨가쁘고, ‘새-하기’의 날갯짓으로 귀가 먹먹하도록 시끄럽다. 새는 어제의 날갯짓을 반성하면서 날개를 펄럭이지 않으며, 내일의 비행을 위해 땀을 흘리며 날갯짓을 연습하지도 않는다. 한 번의 날갯짓은 그 한 번에 완전히 충실하다. 앞과 뒤가 없다. 오로지 현재다. 시인에게는 살아있는 순간, 살아있는 순간, 살아있는 순간의 감각만으로, 시-하고, 시-하고, 시-하면서, 새-하고, 새-하고, 새-하면서 죽어가는 자의 살아 있는 고통의 맥박에 함께 붙들려 있었던 경험이 있다. 그것이 김혜순의 기도일 것이다.
멈출 수 없는 지속의 시간, ‘시-하기’의 시간은 리듬의 시간이야. “리듬은 아직 발이 바닥에 닿지 못하게 하는 공중부양수용소”(「비탄 기타」, 42쪽). 리듬은 새들을 들썩이게 해. 리듬은 멜로디가 아니야. 리듬은 심장 소리, 북소리, 두두두두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 멜로디의 계열에는 남자, 고뇌, 애도, 정신, 연설, 이름, 내용 등이 줄 서고, 리듬의 이웃으로는 여자, 고통, 신경, 비명, 익명, 박자가 뒤섞여 살지.

 

새들의 그로테스크 숭고

“나는 이제 줄이 긴 새 떼가 될 거다/ 이 도시를 칭칭 감을 거다”(「쌍시옷/쌍시옷」, 18쪽).

김혜순의 ‘새-하기’는 한 명의 인간이 한 마리의 새로 변신하는 변신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완료되는 사건이 아니다. ‘하기’는 언제나 ‘한가운데’다. 형태를 표상할 수 없고 완료시점을 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김혜순의 ‘새-하기’는 ‘무한’을 환기한다. 유한에서 무한이 발생하는 이야기다. 무한이 유한을 내습하는 이야기다.
김혜순 시의 가장 강력한 미학적 동기는 숭고의 경험이다. 당신은 당신의 수용력, 말하자면 당신의 새장이 감당할 수 없는 시공간의 확장, 감각적 자료들의 과잉에 압도된다. 그 순간 당신은 시인의 감각적 경험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텍스트 바깥에 제작자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안에서 동시에 진동하고 운동하는 순간에만 실감이 발생하는 존재다. 당신이 만약 이 시집의 한복판에 진입했다면 흔들리고 와해되는 와중에 시인의 실감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숭고-하기’ 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하루 종일 창가에 서서 내가 커지는 놀이”(「작별의 공동체」, 184쪽)를 하고 있다. 이렇게도 말한다. “왜 나는 산산조각 날수록 커지는가”(「티라누스 멜랑콜리쿠스」,80쪽). 김혜순의 실험실은 자신의 몸이다. 몸뚱아리 하나, 그것이 인간이라고 김혜순은 계속 말해왔다. 몸은 부단히 작동됨으로써 몸이다. 멈추면 시체다. 이 ‘작동’에 김혜순은 시적으로 가장 예민하고 과격하게 개입한다. 그리하여 몸이 몸의 새장을 부순다. 이 세계의 상징적인 표상에 어떻게도 붙잡히지 않는 몬스터가 된다. 이 세계의 은폐된 재난을 현시하는 거대한 새떼가 되어 우리가 사는 “도시를 칭칭 감”는다. ‘숭고-하기’는 고깃덩어리처럼 헐벗은 몸뚱아리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현장감과 더불어 고양된다.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싸이렌, 싸이렌 소리처럼 들리는 한밤이다.
김혜순에게는 두 개의 눈이 동시에 작동한다. 인간의 감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사이즈를 넘어선 거대한 새의 눈, 그리고 당신의 눈. 마주보면 두 개의 거울처럼 ‘무한’이 가동되고 생산된다. 이상의 거울은 ‘하나’다, 김혜순의 거울은 ‘둘’이다. 두 개의 거울은 셋, 넷, 다섯을 만들고…… 무한을 만든다. 새떼들이 지구를 감을 만큼 긴 줄이 되어 날아간다.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한밤이다. “노를 저어가서 베개를 건져 와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작별의 공동체」, 186쪽)로 내가 커다래진 밤이다.

 

글: 김행숙 Kim Haeng-sook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