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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는 꿈최진영

나도 언젠가는 예의 바르고 싹싹하고 정직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겨우 열네 살이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아빠도 아직 그런 사람이 못 된 것 같은데 어떻게 내게 그런 걸 바랄 수 있지? 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뜬금없이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구고 그 애와 주로 무엇을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니…. (p. 54)

『내가 되는 꿈』

작가 : 최진영
출판사 : 현대문학
출간일 : 2021년 2월 25일
면수 : 240쪽
판형 : 104x182mm
ISBN : 9791190885621

최진영

2006년『실천문학』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팽이』,『겨울방학』, 장편소설『끝나지 않는 노래』,『해가 지는 곳으로』,『이제야 언니에게』등을 썼다. 2020년 만해문학상, 2020년 백신애문학상, 2014년 신동엽문학상, 2010년 한겨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물과 불과 빛. 그리고 꿈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된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어른이 되는 걸까. 어떤 어른은 자신이 어른이라는 것을 모른다. 어떤 어른은 어른이 되지 못했는데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한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어떤 아이는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어른으로 태어났다고 믿는다.
『내가 되는 꿈』에서도 아이가 나온다. 아이는 자란다. 그러나 어른이 되지 않았다. 어른스러운 아이가 됐을 뿐이다.
어른은 상처를 주고 아이는 받는다. 가장 많이 사랑해줘야 할 부모는 가장 많이 상처를 준다. 껴안는 두 손으로 때리고 사랑을 말하는 입술로 저주를 퍼붓는다. 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야 할 선생은 성장하는 아이의 마음과 가능성을 구부리고 누른다. 상처입어 휘어지고 구부러진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피로한 몸을 끌며 땅만 보며 집과 학교를 오간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패이고 숨 쉴 때마다 따가운 날들.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 누가 내 말을 들어줄까.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없다. 없어. 나는 내게 말하리라. 내 말은 내가 들어줄 거야.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내가 될 거야.
아이는 눈물을 닦고 입을 굳게 다물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여기에 없는 친구들과 사랑들을 향해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해는 지고 별이 뜨고 별이 지는 깊은 새벽. 연필은 줄어들고 손가락이 아파도 아이는 멈추지 않는다. 잠들지 않는다.
‘나는 꺾이는 중이었고 부러지기 직전었다. 왜 이런 사람이 되었나. 내 존재를 지우고 싶었다. 지우는 방식으로 선명해지고 싶었다. 나를 외롭게 하는 사람들. 내 허락도 없이 어떤 어른들은 내 것을 함부로 찢고 없앤다. 이 세계의 중심에는 지옥이 있다. 세계는 씨앗처럼 지옥을 품고 있으며 그 씨앗에서 세계는 탄생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건, 잠에서 깰 때마다 우는 건 지옥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물에 잠겼다. 몸부림쳐도 몸에 붙은 불을 끌 수 없었다. 상처가 낫기 전에 또 상처가 생겼다. 아이는 늘 죽기 직전이었고, 실제로 몇 번은 죽었으며, 스스로도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났다. 괴로울 땐 마음이 어둡고 답답할 땐 생각을 나뭇가지와 돌멩이에 가두고 집 앞에 버렸다. 걷고 또 걸으면서 어둠을 향해 거울을 향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글자를 닮은 약하고 납작한 말들이 마른 나무에 새로 돋고 지는 잎사귀처럼 가득 맺혔다가 후두둑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계절이 흘러갔다. 아이는 매 순간 ‘지금’을 살았고 마침내 어른스러운 아이가 된다.
어른스러운 아이는 이제 어른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어른이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할 수 있다. 어른이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할 수 있다. 이제 어른에게 복수할 수 있고 이제 어른에게 말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이 아이는 망설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처럼 쓰고 또 써봤다. 그렇게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 나는 그냥 내가 되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도 될 수 없는 것 몸이 커지고 마음이 많아져도 될 수 없는 것.”
아이는 복수심을 갖고 자랐지만 실제로 복수를 하고 저주의 표현을 했을 때 스스로를 징그럽고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불행의 조건은 차고 넘치지만 불행한다고 여기지 않으려 한다. 지옥에서 태어났으면 지옥의 원주민이 되는 것이 맞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기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아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단단했다. 용기를 내야 할 때 용기를 냈고 진실을 봐야 했을 때 직시했으면 사실을 사실로 확인했다. 그렇게 한 시절. 한 사건. 한 장면씩 맨몸으로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지구를 집어 삼키는 멜랑콜리아 행성이 다가와도 온전히 대면하고 인정했던 저스틴처럼 의연했다. 두렵고 떨렸고 놀랐지만 두려워하거나 놀라워하거나 떨지 않았다. 아이는 비 내리는 바다 앞에 서서 말했다.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비관에 사로잡힌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너와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너는 어딘가에서 행복할 것이다. 나는 불행하지 않다.” (…)
작가는 매번 다른 소설을 썼지만 아이는 작가의 여러 소설 속에서 이만큼 자랐다. 상처 주는 어른의 피를 물려 받았지만, 지옥의 씨에서 태어났지만, 아이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인과와 전개를 거부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어 받는 것을 거절했다. 내 삶과 지금과 내일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매 순간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스스로의 수치와 한계를 직시하고 온몸으로 겪어내면서도 피하지 않고 불 속으로 물 속으로 빛 속으로 걸어갔고 그 순간을 정직하게 기록했다.

 

글: 정용준 Jeong Yong-joon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