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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김민정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작가 : 김민정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간일 : 2019년 12월 10일
면수 : 131쪽
판형 : 128x205mm
ISBN : 9788932035963

김민정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등이 있으며, 박인환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이상화시인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폴짝

 

꼭 저녁 같습니다. 시인이 만들어낸 시의 경계를 두고 하는 은유입니다. 만약 저녁을 정의할 수 있다면 이 경계도 은유적으로나마 더 설명될 것입니다. 먼저 생각으로는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 저녁의 시작이며, 더는 어두워질 수 없을 만큼 어두워졌을 때가 저녁의 끝 같습니다. 이어지는 생각은 저녁밥으로 무엇을 먹을지, 먹는다면 누구와 먹을지 고민을 하는 순간부터 저녁이 시작되며, 밥을 다 먹고서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두었을 때쯤 저녁이 끝나는 것 같습니다. 답의 우열을 가를 필요는 없겠지만, 재미 삼아 사전에서 저녁이라는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저녁;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의 사이.’ 사전적 정의라고 하기에는 다소 추상적인 답을 보고 저는 웃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저녁은 오지 않을 듯 머뭇거리며 오는 것이지만, 결국 분명하게 와서 머물다가, 금세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녁이 아니더라도 오고 가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시인의 시를 읽을 때 펼쳐지는 세계가 그러하듯이.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들에 대하여 또 자기 자신에 대하여 차갑게 말하는 한 여자의 내적인 상태에 주목해야한다. – 김인환,『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해설 중

만약 시인의 차가움이 세상과 타인을 향해 드러난다면 그것은 수동에 가까운 것입니다. 아픈데 누군가가 왜 아프냐고 물어올 때 혹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슬퍼하느냐고 물어올 때 시인은 더없이 차가워지는 듯합니다. 그런 당신은 왜 아프지 않냐고 혹은 왜 슬픔의 중단을 강요하느냐고 차갑게 묻거나, 묻는 일을 겨우 참아내고 마음에 묻어둘 것입니다.
반면에 시인이 스스로에게 차가워지는 순간은 능동적이면서도 단순하게 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잘 살고 싶어하는 일이야 시인의 눈 밖으로 난 지 오래인 듯합니다. 시인은 다만 잘 죽고 싶어합니다. 잘 죽고 싶은데 잘 죽지 못할 것 같을 때 시인은 스스로에게 차가워집니다.
그러면 잘 죽는다는 일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잘’이라는 부사가 ‘죽다’라는 동사와 만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어렵고 어렵습니다. 만약 가능한 일이라면 그 말들의 사이는 죽음의 당사자만이 이어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살아?”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 자신밖에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 죽지 못했으므로 ‘잘’과 ‘죽음’을 이어 붙일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모든 죽음은 애사(哀史)가 될 것이고 모든 삶 또한 역시 애사(哀思)가 될 것입니다. 이 두 극을 늘 생각하고 이어보고 적어나가는 사람의 시가 애사(哀詞)로 가득한 것은 당연한 일 같습니다.

이렇게 쓰는 시간에도 나는 여전히 정말 모르겠다. 김민정을. 그러나 하나는 알겠다. 이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시를 써보고 싶은 시인. 세상에 없던 사랑을 발명해보고 싶은 사람. 그래서 자주 혼자에 갇히는 시인-사람
– 이원,『아름답고 쓸모없기를』 해설 중

아마 시인의 사랑은 이름 짓기-부르기로 발현될 것입니다. 이번 시집에도 수많은 이름들(마르그리트 뒤라스, 기승, 황현산, 리틀엔젤스예술단 어린이합창단, 휘버스, 무구, 무아, 혜은이, 길옥윤, 박찬일, 최정진, 이제니, 엄용수, 김형곤, 김태형, 피케티, 강태형, 김태형, 김태형, 김소진, 함정임, 김태형, 김태형, 이중섭, 김중업, 노희경, 김영옥, 김수현, 이순자, 강부자, 천우희, 김구라, 수경, 베이다오, 김용택, 철규, 제이크, 준, 연준, 김상혁, 이슬아, 스베틀라나 보긴스카야, 민석, 바비, 미미, 손정수, 송방웅, 이천희, 이애란, 허영란, 허영란)이 등장합니다. 관계의 형이상학이자 동시에 형이하학인 이름. 사랑이든 그리움이든 미움이든 원망이든 이해든 사람의 정서가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동명일지라도 유일무이한.
이쯤에서 저는 오래 전 김민정 시인으로부터 들은 말을 똑같이 되돌려주려 합니다. 시인의 말투도 한번 빌려와봅니다.
빚 같지만 빛이고, 앙갚음 같지만 갚음입니다.

시인으로, 시집을 만들면서 살다 보니 시로부터 아주 객관적인 자세를 갖게 된 나는 이제 와 믿게 된 것이 단 하나란다. 그러니까, 시간, 그리고 시라는 나. 우리는 잊힐 것이다. 우리는 우리로밖에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 김민정 시인으로부터 온 이메일, 2011년 12월 7일

준으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제가 되었든 정이든 림이든 산이든 찬이든 경으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었든 지금쯤이면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는 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의 출간을 기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이 기쁜 일을 함께 기뻐해주셨으면 합니다. 문학이든 삶이든 죽음이든 우리들의 ‘거기’가 한 품 더 너르고 커졌으니. 시인의 경계가 이렇게나 아름답게 넓어졌으니.
그곳에서라면 우리는 언제든 폴짝.

 

글: 박준 Park Joon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