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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이현석

이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어야 하지 않을까. 기약할 수 없는 언제인가가 아닌 지금 당장이어야 하지 않나. (p. 62)

『다른 세계에서도』

작가 : 이현석
출판사 : 자음과모음
출간일 : 2021년 2월 12일
면수 : 304쪽
판형 : 138x203mm
ISBN : 9788954446303

이현석

2017년 단편소설「참(站)」으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첫 소설집『다른 세계에서도』출간했고, 제11회 젊은작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우리의 가능성

 

이 소설집에 대해 말하자면, 이라고 쓰고 싶었다. 그러니까, 조금은 자신 있는 말투로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이 얼마나 다양한 사회적·시대적 맥락을 지니는지 투명할 정도로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건 이 소설집 안의 인물들이 너무나 다양해서도, 작가가 다루는 소재들이 방대하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럼 대체 뭐였을까. 부러 그걸 찾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그런 질 문에 스스로 응답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나는 이 소설집의 맨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나는 이 소설집 안의 세계들을 다시, 하나씩, 보기로 했다.
오래전 자신과 어머니를 두고 동성 연인과 떠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환자의 보호자, 그 보호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를 포기하는 의사인 ‘나’, 낙태법 폐지에 찬성하는 언니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위해 임신을 선택한 동생, 80년 5월 광주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정혜와 항상 프랑크프루트로 가고 싶다던 어린시절 잠시 함께였던 간호보조원 언니, 산업재해의 현장에 있었던 우재와 그의 집에 들어가 살았던 희곤, 신종 바이러스를 알아차린 탈북민 출신의 의사와 관성으로 그의 말을 무시한 한국의 의사인 ‘나’….
다양한 인물들만큼이나 넓은 세계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 집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순간에서 너무나 멀어진 채 “사랑은 스스로를 얼마나 속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 아닌지”(168쪽) 낙담하게 되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사람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인간이라는 단어 자체에 낙담을 느끼게 하는 학살의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그 언니 정말 거기가 있으려나”(254쪽) 생각하는 소설 속 정혜에게 ‘응. 정말 갔 을 거야. 거기 꼭 살아 있을 거야’ 하고 말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씩 소설의 인물들을 다시 보고 나서야 어느 순간부터 내가 소설 속 화자들과 비슷한 마음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바로 이 마음이 이 소설집에 대해 무언가 단언하듯 말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해주었다. 어쩌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있어도 안녕을 바라는 그 마음, 그 마음이 향한 곳에는 어떤 수치심과 모멸감이 있었다.
아니, 항상 옳고 멋진 선택을 할 수는 없는 세상에서 그 선택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책임감을 느끼고, 또 이를 되묻는 데서 오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특히, ‘너의 불행은 모두 네가 선택한 거야’라는 말로 갇히고 재단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여성들이, 또 누군가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거기에 있었다. 물론 이 소설집에서 그들은 마냥 정의롭기만 하다가 사회에 희생되는 사람들로 등장하지 않는다. 언제나 현명하고 강단 있는 사람들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은 끝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사회의 일들에 의문을 품는다. 사람에게 회의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런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세상’이란 건 슬프지만, 다만 이런 마음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 어떤 위로가 되는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그 자체로 너무나 ‘나’ 같기도 했으니까, 언제나 ‘그건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야’라는 말 속에서 ‘내가 정말 예민해서 그런가’ 되묻기만 했던 나와 너무 비슷하기도 했으니까, 그랬던 나에게 누군가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더 이상 어리석음을 강요받았던 과거의 나를 탓하거나 부끄럽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조금 더 이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응시하고 질문하고 다시 시작해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마음은 참상의 순간에조차 성 판매 여성들의 혈액은 받지 않는다고 외치는 세상에서도, 그 한편에서는 제발 내 피를 받아달라고 말하는 어린 학생들이 있음을 말해주는 이 소설 속 세계가 있어서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뜨거운 피가 팩에 차오르는 것을 응시하는 정혜 같은 인물이 있기에, 그러므로 이제 나 또한 수치와 모멸감이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조금은 더 머무른 채 응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그때 궁금했었다.「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의 ‘그’는 언젠가 그 이야기를 쓸까? 써야만 한다고 했을 때 그는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이야기할까. 그가 염려했던 모든 것을 다 껴안은 채 ‘그’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지만 다시 이 소설집의 마지막까지 왔을 때 나는 이제 정원에 ‘그’가 남겨둔 많은 이야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남겨진 게 아니라 응시되고 있으니까. 이 포기하지 않는 응시는 비록 수치와 모멸감을 주는 세계일지라도 우리를 각자의 세계 안에서 다른 누군가를 진정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렇다면 바로 그 마음이 결국엔 우리를 구할 거니까. 이 소설들이 우리를 가능하게 만들 거니까.

 

글: 한정현 Han Jung-hyun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