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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김이듬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작가 :김이듬
출판사 : 현대문학
출간일 : 2019년 8월 31일
면수 : 188쪽
판형 : 104x182mm
ISBN : 9788972751168

김이듬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했다. 시집 『별 모양의 얼룩』, 『표류하는 흑발』, 영역시집 『Cheer Up Femme Fatale』 , 『Hysteria』 등을 냈다. 시와세계작품상, 김춘수시문학상, 전미번역상,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등을 수상했다.

인생이 싫은 날에도

 

김이듬은 거침없고 솔직한 언어로 자신만의 독특한 활력이 살아 숨 쉬는 시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시집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에서 산문시의 형식을 고수하면서도 여전히 순도 높은 서정성을 놓치지 않고 자유스러운 화법을 구사하며, 그동안 다져온 시 세계를 더욱 확장시킨다.

그동안 김이듬의 시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층적인 목소리가 채워져 왔다. 특히 미혼모, 창녀, 이혼녀, 동성애자, 정신질환자, 가나한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시에 자주 등장했다. 그들은 대부분 불가피하게 사람이지만, 조금 모자라게 살아 있는 인간이다. 시인은 세계의 표면에 겨우 서 있는 존재들을 거침없고 솔직하게 호명한다. 연민이자 자애의 태도가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환대의 제스처가 아닌 의도된 오해와 위악적인 해석으로 김이듬의 시는 인물들을 보듬는다.

시집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장소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다층적인 목소리를 담았다. 약하고 왜소한 자들의 담화를 예민한 감각으로 벼려낸 서른여덟 편의 시편을 통해 펼쳐 보인다. 이를 통해 넌더리나는 오해와 갈등 속에서도 “사랑은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정오의 마음」)라고 노래한다. 포기를 모르는 이런 시인의 절규는 차라리 아름답게 들리며 독자들을 감응시킨다.

때로 시인은 서점을 운영하며 생겨난 일화들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2년 전 경기도 일산에 ‘책방이듬’을 열고 경험한 또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를 시에 녹여낸 것이다. 그중에서「아쿠아리움」은 실연한 손님에게 책을 소개한 경험을 담고 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나는 생각한다

실연한 사람에게 권할 책으로 뭐가 있을까

그가 푸른 바다거북이 곁에서 읽을 책을 달라고 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웃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나는 참는 동물이기 때문에

대형 어류를 키우는 일이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쳐다본다

최근에 그는 사람을 잃었다고 말한다

죽음을 앞둔 상어와 흑가오리에게 먹이를 주다가 읽을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

 

사람들은 내 곁에서 책을 읽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팔지 않는 책이 내게는 있다

궁핍하지만 대담하게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자라고 있다

– 「아쿠아리움」 중에서

 

‘책방에 홀로 앉아있다 보면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가 된 기분’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시의 제목이 왜 ‘아쿠아리움’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의 마음은 자기 안의 외로움이나 고립감에만 갇히지 않고, ‘책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우연히 조우하게 된 이들의 삶에까지 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