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

2019년 한국문학은 페미니즘의 지배적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에스에프(SF)의 약진이 목격되었다. 에스에프 잡지가 창간되었고, 한국 에스에프 소설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됐다. 페미니즘이 성소수자에 주목하는 퀴어 문학으로 넓어지는 한편에서는 이 시대의 일과 삶의 관계를 다루는 ‘21세기형 노동문학’의 출현도 볼 수 있었다. ‘정체성 정치’와 그에 기반한 소수자 문학은 자칫 놓치거나 소홀히 할 수 있는 노동과 경제의 문제 역시 작가들의 탐침에 포착되고 있다는 반가운 징후로 판단되었다.

페미니즘·젠더 문제 다룬 소설의 강세

2016년 10월에 초판이 출간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은 그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2019년 10월에 개봉되면서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역주행’을 보였다. 그런 현상은 이 작품을 향한 여러 문학적·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소설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반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해문학상을 받은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창비)을 비롯해 최진영의 『이제야 언니에게』(창비), 윤이형의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문학동네),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민음사), 임솔아의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문학동네) 등이 조남주의 소설과 함께 페미니즘의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윤이형의 소설집은, 이 작가가 2020년 초에 이상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불공정 계약 논란 와중에 활동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그가 활동 중단 선언을 번복하지 않는 한 공식적으로 출간된 마지막 개인 소설집으로 남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남성 작가 김탁환은 역사 장편 『대소설의 시대』(민음사)에서 18세기 한글 소설 붐을 주도한 것이 여성 작가들과 독자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21세기 문학의 페미니즘 바람이 오랜 역사적 연원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했다. 박상영은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으로 퀴어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2018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소재를 지닌 소설집을 냈던 김봉곤에 비해 박상영의 소설들은 마찬가지로 퀴어의 사랑과 삶을 다루면서도 한결 유머러스하고 너른 세계를 보인다는 개성을 지녔다. 박상영의 대학 동창인 여성 작가 김세희의 장편 『항구의 사랑』(민음사)은 지난 시절 여자 중고등학생들 사이의 동성애와 팬픽 문화를 되살려 냈다.

노동소설의 새로움

장강명은 이 시대의 노동과 경제 현장을 다룬 작품들을 한데 묶은 소설집 『산 자들』(민음사)로 21세기형 사실주의의 한 모범을 보였다. 작가 자신이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작가의 말’)이라 표현한 치열한 삶의 현장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는 70년대 사실주의 및 80년대 민중문학과도 통한다고 하겠지만, 작가는 섣불리 단순명쾌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사태의 복합적 측면과 숨은 이면에도 주목함으로써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다. 판교 정보통신 업체에서 일한 경험을 살린 등단작을 표제로 삼은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은 평단의 찬사와 독자의 사랑을 아울러 받았다. 여성 동성애자와 그 어머니를 등장시킨 소설 『딸에 대하여』(민음사)로 호평을 받았던 김혜진은 신작 『9번의 일』(한겨레출판사)에서 명예퇴직 압박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 노동자의 외로운 싸움을 인상적으로 그렸다. 배지영의 소설집 『근린생활자』(한겨레출판사) 역시 임시직과 하청 노동자 등 이 시대의 치열하고 열악한 노동의 현장을 부각시켰다.

장르문학의 대약진

에스에프 작가 김보영이 중단편 세 편을 미국 최대 출판그룹인 하퍼콜린스에 판매한 것이 한국 에스에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신예 작가 김초엽의 에스에프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이 권위 있는 ‘오늘의 작가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한국 평단과 시장에서 에스에프의 입지가 공고해졌음을 알게 해 주었다. 한국 문학에서 에스에프는, 다른 장르문학들과 함께, 주변부 또는 하위 장르로 취급되어 왔는데, 이른바 본격문학의 주요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오늘의 작가상’이 에스에프 소설의 손을 들어 준 것은 에스에프의 권리 회복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라 해도 좋겠다. 에스에프 전문 무크 『오늘의 SF』(아르테)가 창간된 것 역시 한국 에스에프의 그런 위상 변화를 반영한 일이었다. 장강명은 『산 자들』과 함께 에스에프 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아작)을 내놓았고, 복거일은 로봇을 화자로 삼은 에스에프 장시(長詩) 「내 살과 넋이 지향하는 곳」(『문학사상』 8월호)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에스에프는 흔히 소설이나 영화처럼 이야기가 있는 서사 형식을 취하기 십상인데, 서정이 주를 이루는 시 장르로 표현된 에스에프는 매우 독특하고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 조남주도 에스에프 장편 『사하맨션』(민음사)을 내놓으며 ‘변신’을 시도했다. 이밖에도 정유정의 『진이, 지니』(은행나무), 백민석의 경장편 『해피 아포칼립스!』(아르테), 구병모의 판타지 소설 『버드 스트라이크』(창비), 도진기의 법정물 『합리적 의심』(비채), 김진명의 역사 팩션(faction) 『직지』(쌤앤파커스), 차무진의 에스에프 액션물 『인 더 백』(요다) 등 다양한 장르소설들이 에스에프와 공존을 모색했다.

중견 작가들의 왕성한 작품 활동

은희경의 『빛의 과거』(문지), 이혜경의 『기억의 습지』(현대문학), 전경린의 『이중 연인』(나무옆의자), 공선옥의 『은주의 영화』(창비), 송은일의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문이당), 권여선의 『레몬』(창비) 등 중견 여성 작가들의 신작도 반가웠다. 『빛의 과거』는 작가 자신이 대학에 다녔던 1970년대 후반 여자대학 기숙사를 배경으로 삼아 한 시대의 사회상과 문화적 세목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은주의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루는 대신, 그로부터 조금씩 빗겨 서 있는 인물들의 억울하고 한스러운 사연과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생명력을 부각시킨다.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은 지방의 한 농촌 마을 사람들을 각자의 생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 단편들을 모은 연작집으로,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 없는 존재들에게도 나름의 가치와 드라마는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해 주었다. 이 밖에도 하성란의 『크리스마스 캐럴』(현대문학), 심윤경의 『설이』(한겨레출판사), 편혜영의 『소년이로』(문지), 윤성희의 『상냥한 사람』(창비), 윤고은의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문학동네), 정소현의 『품위 있는 삶』(창비), 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문학동네), 황현진의 『호재』(민음사), 최정화의 『흰 도시 이야기』(문학동네) 등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꾸준히 이어졌다.

남성 중견 작가들도 부지런히 새 작품을 선보였다. 조정래는 세 권짜리 장편 『천년의 질문』(전 3권, 해냄출판사)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고, 성석제는 두 권짜리 장편 『왕은 안녕하시다』(전 2권, 문학동네)에서 사화로 얼룩진 조선 숙종 시대를 특유의 발랄한 문체로 그렸다. 10월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전 10권, 해냄출판사)을 기념하는 태백산맥문학관의 소재지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민회가 제정한 조정래문학상의 제1회 수상작으로 성석제의 『왕은 안녕하시다』가 선정되기도 했다. 해방과 전쟁의 격변기에 남로당 쪽에 섰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김성동의 연작 소설집 『민들레꽃반지』(솔), 그리고 제주 4.3의 아픔을 다룬 임철우의 경장편 『돌담에 속삭이는』(현대문학)이 한국 현대사의 질곡에 주목했다면, 이만교의 『예순여섯 명의 한기 씨』(문학동네)는 용산참사라는 10년 전 아픔을 독특한 방식으로 소환했다.

시집과 에세이 출간의 경향

김혜순은 세계적 권위를 지닌 캐나다의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신작 시집 『날개환상통』(문지)과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문지)를 내놓으며 의욕적인 활동을 이어 갔다. 한국 시인의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은 노벨문학상을 향한 또 하나의 걸음으로 나라 안팎에서 평가받았다. 지난해 별세한 허수경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난다)이 독자들의 아픈 사랑을 받았고, 시인 고형렬은 7권짜리 방대한 단행본 『고형렬 장자 에세이』(전 7권, 에세이스트사)로 특유의 묵직한 사유와 잠언투 문체를 과시했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달빛을 깨물다』(천년의시작)와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역락) 두 시집을 한꺼번에 내놓으며 그와 함께 그동안 해 온 사진 작업으로 전시회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시로 출발했으나 시를 떠나 오랫동안 소설과 독서 에세이, 칼럼 등으로 활동 영역을 옮겨 온 장정일이 오랜만에 신작 시집 『눈 속의 구조대』(민음사)를 출간해 시로의 복귀를 알렸다. 이 밖에도 송재학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문지), 정끝별 시집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문학동네), 신용목 시집 『나의 끝 거창』(현대문학) 등 정통파 시인들의 시집이 관심을 모았다.

김영하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문학동네)가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김훈 산문집 『연필로 쓰기』(문학동네) 역시 산문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소설가와 함께 여행자를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이라 소개한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자신의 여행 경험을 바탕에 깔고 그로부터 삶과 세계에 관한 생각을 끌어낸다. 여행지의 풍광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감상을 곁들이는 여느 여행기와는 달리, 탄탄한 인문적 사유와 통찰로 무장해 읽는 맛을 주었다. 김훈의 산문은 예의 아름답고 탄탄한 문장은 여전하지만, 사회적 현안과 어려운 이들에 대한 관심이 한결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인다.

이 밖에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가 『그 이름 안티고네』(현대문학)와 『작은 것이 아름답다』(민음사) 두 산문집을 상재했고, 지난해 작고한 비평가 황현산의 트위터 글 모음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난다)도 압축적 글쓰기의 매력을 한껏 과시했다. 우애 좋은 비평가 권성우와 오길영은 산문집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소명출판)과 『아름다운 단단함』(소명출판)을 나란히 내놓았다.

논란과 부고들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 등을 대상으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했고, 신경숙은 표절 논란 이후 4년 만에 중편소설을 발표하며 ‘복귀’를 신고했다. 그러나 발표 매체가 표절 논란 당시 그를 적극 옹호했던 창비(『창작과비평』)여서 그 적절성을 두고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김경주 시인은 도록 해설을 후배 문인에게 대필시킨 사실이 드러나 사과했고, 문단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황병승 시인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정든 땅 언덕 위』(민음사), 『어느 사학도의 젊은 시절』(심설당) 같은 소설의 지은이이자 전태일과 광주대단지사건 등의 논픽션 작가이며 국토 기행 산문집을 여럿 낸 ‘발의 작가’ 박태순이 세상을 떴다. 소설가 김병총과 강민 시인도 명을 달리했다.

한겨레 선임기자 최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