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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문보영

『배틀그라운드』

작가 : 문보영
출판사 : 현대문학
출간일 : 2019년 8월 31일
면수 : 136쪽
판형 : 104x182mm
ISBN : 9788972751182

문보영

시인. 2016년 <중앙일보>로 등단했다. 시집 『책기둥』으로 제36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산문집으로『사람을 미워하는 다정한 방식』,『준최선의 롱런』이 있다.

이토록 낯설고 익숙한 세계

 

모든 작품과 기본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배틀그라운드>는 다른 ‘1인칭 슈팅(FPS: First-person shooter)’ 게임이 으레 그러하듯, 총기를 이용해 적과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다. 다만 미묘하게 다른 점은 이 세계의 근본적인 목적이 타 플레이어를 많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살아남는 데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 생존자가 되는 가장 즉각적인 방법은 적을 직접 제거하는 것이겠지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 홀로 살아남는 일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세계의 룰은 이러하다. 100명의 플레이어가 고립된 섬에 떨어진다. 그 섬은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플레이어는 자신이 낙하할 곳을 선택할 수 있다. 본인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훌륭한 보급품과 무기들이 많은 지역은 다른 이들과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은 의외로 비교적 한적하다.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다면 각 플레이어들은 구석진 자신만의 세계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계 속엔 손쉬운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 강제적인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것은 속칭 ‘원’과 ‘자기장’이라 불리는 것인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원 안쪽은 세계가 허락한 안전지대이고 원 바깥은 자기장으로 이루어진 위험지대이다. “원 바깥에 오래 있으면 체력이 닳고”, 그렇게 계속 밖에 있으면 “결국엔 아파서 죽어버린다”(「배틀그라운드 – 원」). 아프거나 죽지 않기 위해서는 원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스템이 요구하는 원의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지고, 그 좁아진 원 안으로 달려가는 도중에 다른 이들과 강제적인 교전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니 경쟁에서 살아남길 원하는 플레이어는 시스템이 제공하는 보급품을 주워 먹거나, 적군의 시체에서 자원을 강탈하여 타 플레이어보다 강해져야 한다. 이즈음에서 다음과 같은 비판이 나올 수도 있을 듯싶다. 그렇다면 이곳은 존재들과 세계의 불화가 전제되지 않은 곳, 즉 세계를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소거된 곳이지 않은가? (…)
구성원들을 강제하는 조건과 제약이 모두 사라지면, 과연 세계는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형상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라클라우, 무페, 그리고 지젝은 ‘적대’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들은 평화와 혁명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상정되는 어떤 ‘적대’의 형상이, 실은 혁명의 움직임을 지속하게 하는 조건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르크스의 비전을 사례를 든다. 마르크스는 ‘적대’를 해결 가능한 ‘소외’의 관점에 바라보았다. 그는 노동자들이 자본으로부터 혹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소외가 모두 사라지는 순간에 도달할 때 궁극적 혁명이 완수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사회의 원동력을 지속하고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자체를 없애려 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고, 세계의 불화를 없애려는 모든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귀결된다는 사실 속에서만 존재 가능한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 논의의 틀을 잠시 빌려보자. 만약 우리가 세계에서 소외된 스스로를 인지하는 순간부터 이미 이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이라면, “추락하지 않는 인간은 게임 참여 의사가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이 세계에서 “추락으로 시작”(「배틀그라운드 – 사막맵」)되는 세계의 기본값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소외되는 상황을 즐길 줄”(「배틀그라운드 – 원」) 안다고 말하는 시인은 아마도 그 불가피한 추락을 잠시의 비행으로 뒤바꾸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저항이나 전복은 아닐 테지만, 벗어날 수 없는 잔인한 전장의 감각과 인식을 미묘하게 달리 배치해 놓는 시적인 전환이 아닐까.
덧붙여 시집 전체를 하나의 게임으로 묶는 다소 실험적인 이 기획은 해당 시집의 플랫폼과 유달리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일반적인 시집보다 적은 분량의 작품과 별개의 테마를 내건 에세이를 싣는 이 시인선은, 보다 구심력 있고 색깔이 선명한 시적 세계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구성과 내용 모두에서 다소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담고 있다. 그 세계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속해 있는 이곳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곳과 잠시나마 겹쳐 있던 그 세계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또 다른 이해의 겹 하나를 획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글: 조대한 Cho Dae-han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