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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윤이형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 무언가를 하니까 또다시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연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미움이야. - (p. 108~109)

『붕대 감기』

작가 : 윤이형
출판사 : 작가정신
출간일 : 2020년 1월 14일
면수 : 200쪽
판형 : 108*190mm
ISBN : 9791160261561

윤이형

2005년 「검은 불가사리」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14년, 2015년 젊은작가상, 2015년 문지문학상, 2019년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 『작은마음동호회』 등이 있다.

‘진짜 페미니즘’을 넘어서

 

: 윤이형의 『붕대 감기』가 페미니즘‘들’에 대해 말하는 방법

 

윤이형의 소설은 줄곧 약자와 소수자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때로는 일상적 삶의 섬세한 관찰을 통해, 때로는 작가 특유의 SF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질서와 관습이 갖는 억압성과 그럼에도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수자의 감각을 특유의 세대 감각으로 예리하게 포착해왔다. 최근 들어 그러한 작가의 관심은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페미니즘 이슈로 더욱 확장되고 구체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즈음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폭발적 관심과 호응에 힘입어 여성들이 감수해온 폭력과 억압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는 소설들이 세를 늘려가고 있지만, 근자에 발표된 윤이형의 소설만큼 이 문제에 대해 예민하고 자각적인 소설도 그리 흔치 않다. 기혼여성들의 정치적 주체되기의 지난한 과정을 그린 작은마음동호회, 레즈비언 커플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정상성의 폭력을 고발하는 승혜와 미오, 성폭력 피해 사실 여부를 중심으로 ‘성폭력피해자/성폭력가해자’ 간의 대립구도만 앙상하게 남게 되는 성폭력 논쟁을, 피해자에 대한 우리 자신의 고정관념과 통념을 통해 드러낸 피클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윤이형의 소설 『붕대감기』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이다.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의 이야기는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사십 대가 된 지금까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는 ‘진경’과 ‘세연’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둘로부터 마치 가지를 치듯 뻗어나가는 여러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자유연상의 방식으로 펼쳐진다. 이 소설의 서사는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되지 않으면서도 서로 연결된 그들 다양한 여성들의 사연 및 에피소드들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구성은 그 자체로, 소설 속에서 작가인 세연이 쓰려고 했던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들의 우정”(79~80쪽)에 관한 책을 연상시킨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런 물음을 떠올려볼 법도 하다. 나이, 직업, 취향, 기질 등이 서로 다른 그 다양한 여성들의 우정은 과연 가능할까? 이것은 우리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생각과 사연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의문이기도 하다. 젊은 여성들은 분노하고 늙은 여성들은 염려한다. 어떤 여성들은 그들에게 당연하게 요구되었던 꾸밈노동을 거부하는 탈코르셋을 실천하고, 다른 여성들은 탈코르셋이 또 다른 여성 억압적 규범이 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전업주부와 워킹맘, 기혼녀와 비혼녀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적대시한다. 서로 불화하는 이 여성들에게 과연 자매애란 가능한 것인가. 서로 입장과 처지가 다른 다양한 여성들이 펼쳐가는 각색의 에피소드와 대화를 통해 이 소설이 암시하는 고민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작가는 이렇게 소설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여러 물음에 대한 답을 직접 주지는 않는다. 예컨대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자매애”와 같은 모범 답안 말이다. 그 대신 작가는 차이가 적대감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성들이 서로 갈등하면서도 공존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 서로의 차이를 견디면서 여성들 간의 우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등등의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독자들이 각자의 입장과 위치에서 이들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소설을 열어둔다. 이러한 질문의 방식은 우연적이면서도 충동적인 인물들의 이어달리기 형식과 맞물리면서, 페미니즘을 둘러싼 여성들 내부의 입장 차이와 다양한 시선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 이러한 서사 형식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페미니즘 관련 이슈를 양성 간의 대결구도로 이분화하는 데서 벗어나 문제 그 자체를 탈이원적, 탈대립적으로 구성함으로써 등장인물은 물론 독자들에게 익숙한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들어다볼 수 있게 한다.

『붕대 감기』에 남성 인물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와 관련된다. 흔히 페미니즘 이슈를 둘러싼 여성들 간의 차이는 ‘과격한 꼴페미/개념녀’ 혹은 ‘가짜 페미니스트/진짜 페미니스트’로 이분화되곤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그 성격상 ‘악녀(창녀) 아니면 성녀(가정주부)’라는 오래된 남성중심적 도식과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도식이 여성들의 다양한 실제 모습을 지우고 여성을 단순한 몇 개의 이미지로 고정시킨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도식이 여전히 힘이 세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따라서 양 성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구조에 대한 사유가 전제되지 않은 채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다루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소모적인 성 대결이나 뻔한 성차 논의만을 반복할 우려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남성인물을 배제하는 작가의 인물 배치 방식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다시 갇히게 되고 마는 이분법적인 성 구분 도식을 벗어나 그와 무관한 자리에서 여성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럴 때라야 비로소 여성은 남성과의 대타적 관계 속에서 남성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구성된 개별적 주체로 호명되고 인식될 수 있다. 『붕대 감기』 속 여성 인물들이 누구의 딸도,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설은 개별적인 각각의 점들이 조금씩 겹쳐지면서 전체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점묘화처럼, 누군가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이어지게 하면서 익숙하지만 낯선 여성들의 이야기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글: 심진경 Shim Jin-kyung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