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Next Book

빛그물최정례

『빛그물』

작가 : 최정례
출판사 : 창비
출간일 : 2020년 11월 13일
면수 : 132쪽
판형 : 125*200mm
ISBN : 9788936478476

최정례

1955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년『현대시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햇빛 속에 호랑이』,『붉은 밭』,『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등이 있으며, 영역 시선집 『Instances』를 냈다.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1년 1월 16일 별세했다.

빈빈(彬彬)의 빛그물이 되어

 

고수가 된다는 것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일이다. 방법을 깨치는 일이므로 어지간하면 실패할 일이 없는 안정감도 생기지만, 제 방법 안에 갇히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엇비슷한 시만 찍어내게 될 수도 있다. 안정감을 유지하면서 새로움도 펼쳐내는 방식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 모든 예술가의 꿈일 것이다. 최정례는 그 꿈을 이루었다. 이 시인이 여전히 후배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매번 비평가들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오랫동안 잘 해왔던 것을 다시 되짚기보다는 이번 시집에서 유독 자주 발견되는 발상 하나를 정리하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 ‘얽힘’이라는 말로 그 발상을 포괄해보려 한다.

얽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시를 읽으며 적어본 단상이 어디선가 본 듯해서 이 시인의 2006년 시집(『레바논 감정』, 문학과지성사)을 읽고 그해 쓴 글을 펼쳐보았다. 비슷한 표현이 이미 거기에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혹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따위의 문구들 말이다. 이런 문구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포착하는 데 최정례만큼 능한 시인은 없다. 나무에 올라간 염소를 보면서 그들이 “먹기 위해” 혹은 “살기 위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올라가기 위해 그냥/올라가서는/내려오지 못해/매달려 있는 것”이라고 보는 시선(「삼단어법으로」), 남의 소를 끌고 나간 소년이 오히려 소에게 끌려다니다 홧김에 돌을 던졌더니 소가 죽어버린 이야기에 잔뜩 흥미를 느끼는 기질(「남의 소 빌려 쓰기」), 이런 것이 바로 최정례다움의 일면이다.
인생의 아이러니를 다룬다고 점잖게 말해서는 이 고유함을 포착할 수 없다. 핵심은 결국 타인과의 악다구니이다. 전형적이고도 탁월한 시 「이불 장수」를 보자. 이불 가게에 들어가서 이불 한번 만졌다가 이불 장수의 집요한 수완에 말려들어 결국 원하지도 않는 이불을 사고 마는 이야기이다. 이 시에서 반복되는 술어는 ‘뿌리치다’와 ‘꼼짝 못하다’이다. ‘나’를 어떻게든 이용하려 하는 타인을 뿌리치려 하지만,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그에게 꼼짝 못하는 화자가 있다. 타인에게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비난받지 않으려고 차라리 피해자가 될 것을 감수하기도 한다. 이것은 해프닝이 아니라 거의 전쟁이다. 시의 후반부에 덧붙인 (개미의 머리 속에 침투해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곰팡이) 코르디셉스의 이야기는 시인의 농담이 아니다.
한편 더 볼까. 「매미」에서 시인은 탄식한다. 어쩌자고 매미는 “땅속에서 칠년이나 꿈틀대며 기다리다 태어나서는” 아무 데나 들러붙어 저렇게 멈추지 못하는 울음을 울어대는가. 저렇게 울어대는 것이 결국 짝짓기를 위해서라는 것을 떠올리면 “그들 삶의 방식에는 뭔가 가슴 찢는 게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저 수컷 매미를 닮은 사내들에게 약해질 수 있으므로. 그 울음은 “나도 한때는 시를 썼어”라고 말하고 여자를 스쳐가는 “비겁한 사내들”의 “허약한 이야기 주머니” 같은 것이니까. “결혼 첫날만 지내고 달아난 사내의 이야기”야 시인의 배우자와는 무관한 것이겠지만, 그렇게 속절없이 상처 입은 모든 여자들의 속내를 이해한다는 듯이 시의 후반부에서 시인은 복화술을 구사한다. 그리고 그 말투는 다시 「이불 장수」의 그것을 닮는다.

이불 덮고 항우울제를 삼키고 눕게 될 것이다. 벌떡 일어나 소비자고발센터에 전화라도 해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꼼짝 못한다. ―「이불 장수」 부분

뭔가 억울한 듯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은 적이 있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죽여버릴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쓰러져 잔다. ―「매미」 부분

산문시에서 끊어낸 것이라 어색하기는 하지만, 보다시피 두 시의 주인공은 저렇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을 가리키는 단어가 ‘억울(抑鬱)’이다. 억눌림으로써 답답해지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니까 벌떡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은 ‘울화(鬱火)’이고 말이다. 답답함이 활활 탄다는 뜻이다. 밖으로 발산되지 않고 속에서만 존재하는 불이라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은 내 속일 뿐이다. 흔해빠진 투정 같겠지만 실은 ‘자유’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이다. 자유의 본질은 자기 결정이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제 삶을 결정하는 일에 실패하고 자주 저렇게 ‘억울’과 ‘울화’로 자신을 괴롭히고 만다. 최정례의 시는 이렇게 ‘벌떡 일어나 앉은’ 언어들로 쓰인 것들이다. 이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운운하는 것보다는 진전된 설명이 되었을까.
좀더 나아가보면, 이것을 얽힘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얽힌다는 것, 내가 스스로 얽은 것도 아닌데 문득 연결된다는 것. 어떤 사람들은 이 관계의 넝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천성이 그래서’라고 하면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지만, ‘그렇게 견딜 수밖에 없는 을(乙)의 처지여서’라고 하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그렇게 얽힌 채로 ‘억울’과 ‘울화’를 다스리며 살면 뭐가 남는가. 앞서 언급한 시에서 시인은 열심히 공중제비를 돌고 보니 결국 혼자라고 했던가(「공중제비」). 다른 시에서는 살아도 세상이 내 것이 아니더라고 말한다(「다른 사람들의 것」). 꽃과 아이가 눈 맞추는 잠깐의 시간만큼이 내 몫이고, “그 잠깐을 뺀 나머지”는 다 남들의 것이라는 것. 이쯤 되면 이 시들은 “집단”과 “리그”에 맞서 내가 ‘나’를 결정하고 싶다는 조용한 절규처럼 보인다.

 

글 : 신형철 Shin Hyoung-cheol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