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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자리전치형

세월호 참사의 전모를 알아내는 일에 한국 사회는 얼마나 의지를 보여왔는가. 이것을 알아내지 못하고 넘어가도 우리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주위를 맴돌며 일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위해 한국 사회는 무엇을 마련해 왔는가. 이들의 삶을 떠받치는 과학기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프롤로그: 알아내고 마련하다」중에서

『사람의 자리』

작가 : 전치형
출판사 : 이음
출간일 : 2019년 4월 21일
면수 : 296쪽
판형 : 140x210mm
ISBN : 9788993166897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관계, 정치와 엔지니어링의 얽힘, 로봇과 시뮬레이션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2016년 3월 9일이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연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침몰한 배에서 친구를 잃고, 국가와 사회와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채 추스르지 못한 그들의 목소리를  분석하는 일은 힘겨웠다. 겨우 회의를 끝냈을 때, 전치형 선생은 급하게 짐을 꾸렸다. 알파고와 이세돌이 세기의 대결을 펼치는 자리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냥 텔레비전으로 보지 않고 왜 그 자리까지 직접 가느냐고 묻는 내 질문에 그는 답했다. “알파고가 수를 계산해서 착점을 결정하면, 그 지시에 따라 바둑돌을 대신해서 놓아주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 사람을 보려고요.”
전치형 선생은 그렇게 관찰하고 성찰하며 질문한다. 인공지능 로봇인 소피아와 대화를 나누던 한국의 저명한 국회의원이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전향적인 입장에서 소피아에게 한국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 정치인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을 찾은 난민을 두고서는 전향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둘 모두 밖에서 온 낯선 존재인데, 왜 같은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창조물을 우리는 더 안전하고 심지어 친근하다고 느끼는 걸까. 인간은 외부적 요인이 통제된 실험실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요소가 뒤섞인 ‘더러운’ 세상에서 태어나고 성장한다. 인간의 몸에는 역사, 문화, 신념이 새겨져 있다. 그로 인해 인간은 고귀한 동시에 위험한 존재가 된다. 그 불확실성은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조건이자 이유이기도 하다. 깨끗한 소피아는 난민이 될 수 없고, 그래서 인간이 될 수 없다.
로봇은 인간이 되지 못하지만, 인간을 반영한다. 2010년 〈타임〉이 선정한 최고의 발명품 50선 중 하나인 잉키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영어 선생님 로봇이다. 백인 여성의 얼굴을 한 스크린으로 학생들과 만나는 잉키는 영어 교육이 전 국민의 화두가 된 시대에 그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시골 지역에서 사용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놀라운 기술적 발전을 한걸음 물러서서 살펴보면, 이 혁신이 한국사회의 무엇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잉키를 교실 바깥에서 원격으로 조정하는 인물은 필리핀의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이 필리핀 여성은 백인 여성의 얼굴을 한 로봇을 통해서만 한국에서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백인 강사만을 선호하는 한국의 인종차별은 잉키가 일하는 교실에서 로봇의 몸을 빌려 구현되고 강화된다.
알파고와 소피아와 잉키의 시대를 앞에 두고 사람들은 종종 양극단으로 나뉜다. 누군가는 과학기술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에 열렬히 환호하고, 또 누군가는 인간이 열등한 부속품이 될 디스토피아에 미리 좌절한다. 그렇게 과학이 미래를 독점한 시대에, 전치형 선생은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을 살아가는 과학과 인간의 자리를 묻는다. 이세돌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로봇 앞에서 열광하는 한국의 시민들에게 ‘인간이 실패하면 로봇도 실패’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스스로 완전하게 작동하시는 시스템은 존재할 수 없는 비현실이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만날 현실은 특성화고 실습생 이민호와 하청노동자 김용균의 일터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한해 SCI 논문 5만 편을 출판하는 나라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일이 방치되는 일이 마땅한지 질문한다.
그가 있어서 다행이다.

 

글 : 김승섭 Kim Seung-sup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