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Next Book

얼마나 닮았는가김보영

“인간이 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자신의 의식뿐이야. 타인의 의식은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야. 실상 인간이 타인에게 자아가 있다고 추측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 (중략) 인간이 누구에게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는 단순한 습관일 뿐이야. ‘인간이 아닌’ 인간은 역사상 얼마든지 있었어. 노예라든가. 식민지 주민이라든가, 다른 인종이라든가. 하지만 볼 수 있는 게 자신의 자아뿐이라면 그게 정말 자아인지 증명할 도리는 없어.” (「얼마나 닮았는가」, 288쪽)

『얼마나 닮았는가』

작가 : 김보영
출판사 : 아작
출간일 : 2020-10-31
면수 : 384쪽
판형 : 137x197mm
ISBN : 9791165508845

김보영

2004년 「촉각의 경험」으로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중편부문에서 수상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제1회 SF 어워드 장편부문 대상, 제2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우수상, 제5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세계적 SF 거장의 작품을 펴내 온 미국 하퍼콜린스, 영국 하퍼콜린스에서 선집『I'm waiting for you and other stories』가 동시 출간될 예정이다.

얼마나 다른가 : 포스트휴먼 선언문

 

김보영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얼마나 닮았는가」는 “HUN(훈)-1029”(252쪽)이라는 모델명을 지닌 위기관리 AI 컴퓨터의 1인칭 시점으로 우주를 오가는 보급용 원양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서사화하고 있다. 소설에서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251쪽)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이 서사의 중심축이다. 왜 자신이 예비 하드를 장착하기 위한 의체 속에 이전의 정보 자체가 삭제된 채 존재하는지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선원들의 말에 의하면 ‘나’가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를 한 ‘나’의 배경에는 유로파 위성으로 보급 물자를 날라야 하는 임무를 그냥 수행하자는 쪽과, 도중에 포착된 타이탄 위성으로부터의 구조 요청을  먼저 수행해야 한다는 쪽 사이의 갈등이 있었다. ‘나’는 양쪽 모두에게 ‘공공의 적’이 됨으로써 인간들을 화해시켜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는 목적 하에 AI로서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나’의 결정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여성 선장과 가부장적 남성 선원들 사이의 젠더 갈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 이와는 다른 포스트휴먼적 시각에서 ‘나’의 맹점(盲點)에 더 집중해보면 또 다른 이유도 발견된다. 이 소설 자체가 “인간의 신체를 가진 AI의 젠더화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첨예하게 묻는”[2] 방향성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자신의 의식뿐이야. 타인의 의식은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야. 실상 인간이 타인에게 자아가 있다고 추측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  (중략) 인간이 누구에게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는 단순한 습관일 뿐이야. ‘인간이 아닌’ 인간은 역사상 얼마든지 있었어. 노예라든가. 식민지 주민이라든가, 다른 인종이라든가. 하지만 볼 수 있는 게 자신의 자아뿐이라면 그게 정말 자아인지 증명할 도리는 없어.” (「얼마나 닮았는가」, 288쪽)

인용문에서 인간이 비인간과 자신을 구분하는 단 하나의 기준은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의 비인간은 “노예라든가, 식민지 주민이라든가, 다른 인종이라든가”라는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전부터 타자로 간주되었던 존재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포스트휴먼인 ‘나’가 추가된다. ‘나’ 또한 “인간의 야만성이 분출될 만한 취약한 구멍”(311쪽)으로 간주되면서 공격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이 소설을 기존의 타자성 논의의 SF 버전으로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포스트휴먼 중심의 SF로 다시 읽어보자. ‘나’는 인간들에게 “타자에 대한 망상”(328쪽)을 갖지 말기를 권고한다. 이 때의 망상은 포스트휴먼들이 인간을 동경하거나 해칠 것이라는 인간들의 착각을 의미한다. ‘나’는 여전히 인간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난 인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 내가 생각하는 건 보급뿐이야.”(330쪽)라거나 “인간을 생각할 까닭이 없어.”(330쪽)라고 말한다. 심지어 한시적이었지만 선장과 친밀한 교감을 나누기도 하지만, 보급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종적으로 다시 AI로 돌아왔을 때 하는 말이 “나 자신이지. 다행스럽게도.”(330쪽)라거나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다.”(338쪽)라고 말한다. 이럴 때 인간과 포스트휴먼은 공통점을 거울처럼 모방하는 관계가 아니라 차이점을 유지하는 교차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아가 있는 AI인 ‘나’는 ‘인간화’된 AI가 아니라 ‘인간적이기도 한’ AI에 해당한다.
「같은 무게」 또한 인간 중심의 단일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포스트휴먼의 모습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잠시 다녀올 생각으로 다른 우주로 이동했으나 목적지가 아니었고, 되돌아온 곳도 원래 살던 곳이 아니어서 여러 차원을 떠돌며 남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세계에서는 “컴퓨터 같은 사람”(353쪽)으로 살아야 하기에 소위 정상인으로서의 사고나 반응이 부족한 장애인 취급을 받으면서 차별을 받고 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같은 무게’에 대한 인식에서 이런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인간은 “하나만 알면 전체를 안다고 믿는다.”(357쪽) 이럴 때의 ‘같음’은 동일성, 즉 ‘일자(the One)’와 연결되면서 단일성이나 총체성, 일방성을 의미하기에 그 속에 편입되지 않는 타자는 배제하게 된다. 반면 ‘나’에게는 모든 것이 동등하다. “길가다 잠시 만난 사람과 내 친척의 얼굴도 같은 무게”(357쪽)를 지닌다. 이 때의 ‘같음’은 동등성 즉 ‘비일자(Non-Ones)’와 연관되면서 다수성이나 개별성, 상호성을 의미한다.[3] 비인간인 ‘나’는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동일한 가치로 사랑한다.”(365쪽) 그래서 “내겐 사소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같은 가치를 갖는다.”(370쪽)
벤야민에 의하면 근대 리얼리즘 차원에서의 미메시스 능력이란 인간 아닌 것(자연, 동물, 기계 등)과 유사하게 되는 인간의 능력을 통해 비인간과의 유사성을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사람만 흉내 내지 않고 물레방아나 기차 등 다양한 사물들을 흉내 내는 것은 이런 비인간과의 교감을 통해 비인간 안에서 인간과의 유사성을 끌어내려는 시도이다.[4] 이런 근대적 미메시스는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인간을 그 중심에 둔다. 반면 포스트휴먼 미메시스는 비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김보영 소설에서 포스트휴먼 자아가 주로 1인칭 시점을 지니면서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인칭 포스트휴먼은 인간중심적 미메시스의 유사성 개념이 놓치고 있는 ‘차이성’을 재조명하려고 한다.

 

글: 김미현 Kim Mi-hyun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1] 포스트휴먼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젠더적 시각이나 테크노 페미니즘 논의에 대해서는 1)차미령, 「고양이, 사이보그, 그리고 눈물-2010년대 여성소설과 포스트휴먼 ‘몸’의 징후들」(『문학동네』, 2019년 가을호, 534~557쪽) 2)졸고, 「포스트휴먼으로서의 여성과 테크노페미니즘-윤이형과 김초엽 소설을 중심으로」 (『그림자의 빛』, 민음사, 2020, 203~228쪽) 등을 참고할 수 있다.

[2] 인아영, 「젠더로 SF하기」, 『자음과 모음』, 2019년 가을호, 50쪽.

[3] ‘일자’와 ‘비일자’에 대한 논의는 다음 책을 참고했다. 이경란, 『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64~69쪽.

[4] 발터 벤야민, 「미메시스 능력에 대하여」. 『언어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번역자의 과제 외』,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08, 211~212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