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Next Book

연년세세황정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나탈리는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 ( p. 182)

『연년세세』

작가 : 황정은
출판사 : 창비
출간일 : 2020년 9월 18일
면수 : 188쪽
판형 : 128x194mm
ISBN : 9788936434441

황정은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마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파씨의 입문』,『아무도 아닌』, 장편소설『百의 그림자』,『계속해보겠습니다』등을 썼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젊은작가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황정은의 소설에는 늘 삶을 ‘견디어 내는’ 이들이 등장하는데,『연년세세』역시 그러했다. 딱히 행복하다고도 할 수 없는, 결코 기쁘다고도 할 수 없는, 어찌 생각하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에 더 가까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멸과 분노를 견디며 꾸역꾸역 살아남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었다.
단편집임에도 4편의 연작소설을 거치며 마치 장편과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책은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맞벌이인 큰딸 부부를 도와주기 위해 사돈 명의의 빌라에 들어가 살림을 해주는 노부부 이순일과 한중언, 백화점에서 이불을 파는 그들의 장녀 한영진, 글을 쓰는 차녀 한세진, 그리고 호주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막내 한만수, 그 밖에 한영진의 남편 김원상과 한세진의 여자친구 하미영, 이순일의 이모인 윤부경과 윤부경의 아들 노먼 카일리, 그리고 그의 딸 제이미 카일리의 이야기. 너무 평범해서 주변에서 한두  쯤 흔히 들어보았을 만한 그런 사연들.
이들은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처럼 평범하면서도 매우 전형적인 갈등을 겪는다. 이순일은 한영진의 살림을 도맡고 한영진의 아이들을 돌보느라 하루종일 편히 앉을 틈도 없이 고된 노동을 하는데, 한영진은 엄마를 그렇게 착취하는 대가로 엄마의 짜증과 온갖 물건들과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생계의 무거운 짐을 지워준 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견딘다. 또한 이순일은 어린 자신에게 고된 노동을 시켰던 할아버지를 여전히 원망하며 용서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그가 자신의 결혼식 날 노란 약국 봉투에 부조금을 넣어 내밀었던 기억을 이따금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한편 이순일은 시시때때로 어린시절의 동무인 순자에 대한 생각도 한다. 이순일의 유일했던 동무 순자. 식모살이를 하던 이순일에게 마음을 나눠주고, 짜장면을 사주고, 도망가게 해주고, 그러다 다시 붙잡히게도 만들었던 순자. 그런 순자의 뺨을 때렸던 장면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회상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가 상처투성이다.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착취당하며 상처가 있는 이들은 상처를 이유로 다른 이에게 반드시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적어도 소설 속에서는 이들에게 ‘기쁨’의 정서가 없다시피 하다. 독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들기 마련인데,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이 그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감정들은 이들이 겪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사는 동안 행복이나 기쁨은 오로지 찰나의 순간뿐, 대부분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그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다.
여전히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순일의 입을 빌려 말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끝끝내 살아가는 이유, 환멸나는 생을 견디어 나가는 이유는 ‘잘 살기’를 바래서라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이들은 오로지 서로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각자 자신의 삶을 견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 내가 미워하던 사람이, 부서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볼 때의 마음을 어떤 말로 표현한단 말인가.
어쩌면 작가가 소설을 쓰며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 역시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본래 괴로운 것, 필연적으로 고통스러운 것,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우리가 그 상처를 지워버릴 순 없더라도, 용서를 할 순 없더라도,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고. 이해함으로써 그들을 가여워할 수는 있다고. 우리가 이 고단한 세상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연민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에 대한 연민을 간직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살아갈 수 있다고.

 

글 : 한승혜 Han Seung-hy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