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Next 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 (p. 18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작가 : 김초엽
출판사 : 허블
출간일 : 2019년 6월 24일
면수 : 344쪽
판형 : 130x198mm
ISBN : 9791190090018

김초엽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을 출간했고,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다.

아름다운 존재들의 제자리를 찾아서

 

김초엽의 SF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미래다. 동시대 현실에서는 아직 가능하지 않은 미래의 과학기술이 우리를 다채롭고 신비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그 세계 안에서 우리는 인간배아도 디자인할 수 있고, 외계에 사는 지성 생명체와도 교류할 수 있으며, 데이터 시뮬레이션으로 죽은 가족과도 만날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언젠가는 닿을지도 모를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먼 미래는 아니다. 김초엽이 그려내는 소설 세계는 지금 여기의 사회 문제들을 예리하게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를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선명하고, 성과 위주의 시스템 속에서 비경제적인 가치는 배제되며, 정상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존재들은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된다. 첨단 과학기술로 인류가 도달한 세계는 정말로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을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차별, 억압, 소외, 고통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까?
>과학기술 자체가 더 좋은 세상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 발전의 귀결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를 따져 묻는 이분법적인 질문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복잡하게 연루되어 있는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과정 자체일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비정상으로 규정되어 오랫동안 잊혔던 존재를 떠올려볼 수도 있고,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진 존재들에게 각기 마땅한 가치를 부여해볼 수도 있으며, 과학기술이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는 세상을 꿈꿔볼 수도 있다. 그 아름다운 모험의 길을 김초엽의 소설은 우리에게 마련해주었다.

잊혀간 이들을 위한 항해
김초엽의 소설에서 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사라지거나 실종된 상황에서 출발하여 그의 궤적을 따라가며 서서히 진실을 깨닫는 서사가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진실일까?
​「관내분실」에는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를 수집하는 도서관이 나온다. 마인드와 접속하면 망자의 영혼과 조우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망자를 추모하거나 만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 지민은 3년 전에 엄마의 영혼이 담긴 마인드의 인덱스가 도서관 내에서 분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생전에 우울증으로 인해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준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던 지민은, 죽은 후에 분실되어 이중으로 자리가 지워진 엄마의 진실을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지민이 알게 되는 것은 단지 엄마가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임신으로 인해 일을 중단하면서 산후우울증을 겪기 시작했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도 이미 엄마의 삶은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다는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은 마침 임신 8주 차로서 아이에게 모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맞물리면서, 결혼과 임신을 거치며 여성들이 세상과 단절되는 상황에 대한 이해로 확장된다. 결국 다시 엄마의 영혼과 조우한 지민은 엄마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어렵게 말을 꺼낸다. 무슨 말로도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엄마를 이해한다고. 지민이 용기 내어 건넨 이 말은, 불화를 겪었던 엄마에게 보내는 화해의 메시지를 넘어 세상과 단절된 여성들을 세상과 연결된 끈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이 마음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등장하는 여성 과학자에게로 이어진다. 우주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해진 시대에 슬렌포니아라는 제3행성에 가기 위해 100년 넘게 우주정류장에서 혼자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는 170세 노인 안나의 이야기다. 우주 데브리를 폐기하고 회수하기 위해 안나를 찾아온 직원에 의해 조금씩 밝혀지는 바에 따르면, 안나는 우주개척시대의 서막이 열리던 시대에 인체를 냉동 수면하는 딥프리징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그러나 우주 공간을 왜곡해 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워프항법이 개발된 이후에 그보다 훨씬 능률적인 웜홀 통로의 존재가 밝혀지자, 경제적인 효율을 따지는 우주 연방의 일방적인 통보로 인해 안나는 먼저 남편과 아이를 떠나보낸 먼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갈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안나는 여전히 우주 한복판에 홀로 남아 딥프리징 기술로 생명을 어렵게 연장하며 슬렌포니아로 가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안나가 가진 구식 셔틀로는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수만 년이 걸리는 슬렌포니아 행성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라는 말과 함께 유유히 정거장을 떠난다.
경제적인 효율만을 계산하는 우주 연방의 기획에 의해 꿈이 가로막힌 여성 과학자가 이미 죽었을 가족에게 품고 있는 100년의 그리움은, 광속으로 수만 년 떨어진 성간 거리와 더불어 더욱 슬프고 아득하다. 안나의 마지막 항해는 결국 죽음을 향하겠지만, 실패가 예견된 이 여정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며 저물어가는 것들의 결을 섬세하게 쓸어보면서 잊히고 사라진 누군가의 흔적은 다시 의미가 되어 떠오르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로도 갈 수도 없고, 죽은 사람도 되돌릴 수 없으며, 우주를 개척하는 것도 아니지만, 불가능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망각의 힘을 거슬러, 안나와 이 소설은 움직여본다. 잊혀간 사람들이 간직한 마음의 진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글: 인아영 In A-young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