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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인 안녕하재연

말해본 적 없는 이야기들에 물음표를 그리며 사라지는 아이와 다 듣지 못한 말들을 등에 포개고 멀어지던 어머니의 뒷모습에 이 시들을 둔다. 따라가는 발자국처럼. - 작가의 말

『우주적인 안녕』

작가 : 하재연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간일 : 2019년 4월 24일
면수 : 143쪽
판형 : 128x205mm
ISBN : 9788932035345

하재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있다. 연구와 함께 시를 쓰면서, 시집 『라디오 데이즈』,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등을 냈다.

무한히 증식하는 세계로의 초대

 

처음 만났을 때도 마지막에 헤어질 때도 쓸 수 있는 단어 “안녕”. 시인이 건네는 것은 시작의 인사일까, 끝맺음의 인사일까. 끝과 시작을 일렬로 배열해내는 시라면 이 물음에 적절한 답을 구하기는 쉬워 보인다. 하지만 하재연의 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선형적 시공간 개념을 뚝뚝 끊어내고, 그 사이에 벌어진 틈 속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 뒤섞는다. 이 세계에서 “안녕”을 우리가 본래 알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재연이 건네는 “안녕”은 전혀 다른 의미들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한 단어로 작용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확장성의 세계, ㅇ으로 시작해 다시 ㅇ으로 끝나는 하재연의 인사, ‘우주적인 안녕’을 당신에게 건넨다.

여기, 다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계가 있다. 열 마리의 모래무지를 바다로 돌려보냈는데 알고 보니 모래무지는 민물고기였고, 생일을 맞아 열 개의 축포를 터뜨렸지만 일곱 발만 터졌으며(「양양」), 펼쳐져서는 안 되는 순간에 펼쳐지는 인공위성의 날개가 있다(「스피릿과 오퍼튜니티」). 왜 이렇게 끝나는 걸까 싶은 서사의 끝 같지 않은 끝 앞에서 하재연의 시 세계가 시작된다.

시인의 시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 우린 그의 시집을 관통한 ‘시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는 시간, 1분이든 1초든 동일한 간격으로 흐르는 시간, 그래서 1초, 2초…… 살다 보면 어느새 하루하루가 쌓이는 그런 선형성의 시간이다.

그런데 하재연의 시간은 어쩐지 수상하다. 이 책에서 시간은 직선형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벌어진 틈으로 흘러내리는 모양새이다. 흘러내리는 시간의 흐름은 직선의 형태가 아니라 마치 프랙탈, 트라이앵글, 삼각형을 그리는 아이의 손가락처럼 돌고 돌고 도는, 비선형적인 도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이 세계에선 “오래전의 미래”(「화성의 공전」)라는 단어도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은 어느새 미래의 꼬리를 잡고, 시간의 고리를 따라 돌다 보면 미래 역시 오래전에 지나쳤던 시간의 한 지점에 불과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눈송이의 모양은 완전하지 않다고 한다.

프랙탈, 당신,

당신, 나, 프랙탈,

 

너와 나는 불완전하게 다만 서로를 증식시킨다.

 

북극의 프랑켄슈타인과 같이, 빙하에 걸린 구름과 같이

쪼개지는 얼음과, 흩어지는 얼굴과

– 「적기」 중에서

 

“떨어지는 눈송이의 모양은 완전하지” 않으므로, 완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쌓이고 쌓인 모양새 또한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정삼각형을 계속해서 쌓으면 더 커다란 정삼각형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불완전하게 증식된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쌓인 것처럼 완전히 어긋난 형태로 존재한다. “투명한 우산 하나를 나누어 쓰고/너랑 나는 다른 비를 피하고 있었지”(「폭우」)라는 언술처럼 투명한 하나의 우산을 쓰고 있음에도 우리 위로 쏟아지는 서로 다른 빗방울들이 있다. 아무리 끝없이 내리는 폭우 속에서도 결코 만날 수 없는 빗방울처럼 너와 나도 온전히 다른 시공간 속에 외따로 존재할 뿐이다.

 

원래,는 언제부터,와 이어지는가

삶 이전에 죽음이 죽음 이후에도 죽음이 있었다는 말은

이상한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녹아드는 시간 속에서

– 「시티 오브 솔트」 중에서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간을 그려나가는 너와 나의 시공간은 일정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은 틈들이 있지 않을까. 그 틈들로 “모든 것이 녹아드는 시간”, 하재연이 그리는 비선형성의 시공간에는 “삶 이전에 죽음이 죽음 이후에도 죽음”이 존재하는 곳이자 삶과 죽음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한 확장성의 세계가 가능할 수 있다는 시적 상상력이 작동한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하재연의 세계에선 죽음 이후의 죽음, 타인 사이의 온전한 만남 등, 우리가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실현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