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문·사회

굵직굵직한 사회적 이슈들과 구조적 변동 속에서 선전했던 2019년 인문 사회 분야의 도서들

2019년 전체 독서 시장은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선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문 분야는 (분야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을 차치하고) 학습서와 아동서를 제외하면 매출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 2019년에도 이 비중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이제 인문학이란 이전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또 훨씬 더 삶과 밀착되어가는(삶의 문제들을 직접 다루는) 이야기를 지칭하는 듯하다. 시간적인 거리를 두고 2019년 인문 도서와 사회 도서의 흐름을 되돌아보려고 하니 새삼 2019년부터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의 변화가 얼마나 심대한 것이었는지 놀라게 된다. 이 변화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고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특히 세대 간, 성별 간 갈등과 문제제기가 더 본격화한 시기이기도 하고, 이전에 학습한 사회적 규범에 대한 감각을 다시 성찰하고 가다듬어보아야 할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조응한 2019년 인문·사회 분야 도서의 경향을 정리해보자.

  30~40대 여성 독자의 위상 강화와 심리학 분야 도서의 강세

우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라 할 수 있는 큰 흐름은, 도서 시장 전반에 걸쳐 30~40대 여성 독자의 존재감이 독보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2019년 교보문고 결산 자료를 보면 이들의 판매 점유율은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한 모든 그룹들을 통틀어 전체의 거의 절반, 총 40%에 이른다.) 이런 흐름은 인문 사회 분야 안에서 교육이나 양육과 관련된 도서들, 또 장르 크로스오버 도서들(가령 인문+실용, 인문+자기계발, 인문+에세이 도서들)의 비중을 크게 늘리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남성 독자들이 애독한 도서에도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지만, 특히 여성 독자들을 의식한 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인문서, 사회서가 경량화되었다기보다는 거꾸로 실용서임에도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하고 자기계발서임에도 깊이 있는 정보와 관점을 담으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가령 『여자는 체력』(메멘토), 『출근길의 주문』(한겨레) 같은 책들이 그 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위즈덤하우스) 같은 에세이에서도,   『비커밍』(웅진출판) 같은 유명인사의 회고록에서도 이런 경향을 관찰할 수 있겠다.

또 하나의 큰 흐름으로 역시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심리학 분야 도서의 강세를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인간 본성의 법칙』(위즈덤하우스)은 역시 심리학 연구자가 쓴 책이 아님에도 심리학 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을 했고, 『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메이븐) 역시 융의 정신분석의 특징 가운데 ‘종교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 집중한 책으로서 유튜브 강의로 바이럴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김영사), 『당신이 옳다』(해냄) 같은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 혹은 심리적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실용적인 팁을 담은 책들이 예년과 같이 꾸준히 출간되어 강세를 누린 것 외에도 구체적인 심리적 문제들이나 뇌 건강 문제들을 겪은 당사자들(혹은 당사자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출간되어 독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 특기할 만하다. 그중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심심),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그 혼돈의 연대기』(심심) 같은 책들이 인상적이다.

불공정 사회와 세대 문제를 다룬 책들의 인기 맥락

2019년의 구체적인 이슈를 떠올려보면, 역시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전 법무부장관의 자녀가 불공정하게 쌓아올린 ‘스펙’을 입시에 이용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것이었다. 실제 입시 과정에서의 불법성 여부와 별개로 상류층이 계층 격차를 고정시키기 위해 교육과 입시에서 어떤 무궁무진한 방법들을 활용하는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민주화와 평등의 가치를 옹호해온 소위 ‘586세대’의 상당수가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이런 흐름에 편승해왔다는(혹은 그것을 주도해왔다는) 측면에서 ‘세대’ 이슈로 논의되기도 했다. 이들이 고도성장기의 수혜를 누리며 성취한 좋은 학력과 경력을 활용해 저성장기를 살아가야 할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적인 안전망을 보장해주려고 애쓰는 모습은 기묘하면서도 인상적이었고, 그런 노력이 설령 합법적인 관행의 테두리에 있을지언정 ‘기회의 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다. 금융 및 부동산 자산을 물려주는 것만큼 가시적이지 않지만 그만큼 더 근본적일 수 있었던 문화적, 사회적 자산의 세습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20대 80의 사회: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민음사)는 이런 현상이 한국 사회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을 암시하며 언론에 크게 소개되고 서점에서도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했다. 『불평등 세대』(문학과지성사) 역시 현상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더 깊이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주었다. 모호한 이상주의로 무장한 선량한 차별주의를 넘어 구체적이고 엄밀한 실천을 통해 적극적 평등주의로 가는 길을 제시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가 2019년 인문·사회 도서 중 가장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데에도 이런 사회 분위기가 일조했을 것이다.

한국 근대사와 한일 관계의 문제

한편 어느새 기억이 아련해지고 있지만 한일 관계의 악화 역시 2019년을 뜨겁게 달군 이슈였다. 일본 기업의 상품 불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진 이 이슈로 출판계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소설이나 에세이, 아동서 분야에서와는 달리 단순히 일서라고 해서 특별히 출간이 취소되거나 지연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 관계의 악화와 일본 사회의 보수화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증언이 더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책임에 대하여』(돌베개)가 바로 그런 경우다.) 『반일종족주의: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미래사)은 일본을 바라보는 관점,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바라보는 관점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논쟁과 갈등의 핵심임을 보여주었다. 북미 관계의 개선을 기대하던 상황에서 다시 동아시아에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으로 끝없이 뒤바뀌는 지정학적 현실을 국내서 단행본으로 담아내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 북한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들이 몇 년간 꾸준히 개발된 것처럼 앞으로 일본 사회의 변화와 한일 갈등의 맥락을 더 깊고 넓게 파고드는 책들이 더 출간되기를 기대한다.(2019년의 책으로는 11월 출간된 『굿바이 일본』(그린하우스)나 혹은 메디치미디어에서 출간되는 일련의 책들 정도를 언급할 수 있을 듯하다.)

밀레니얼 세대와 기술 환경 변화에 대한 관심

마지막으로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90년대생이 온다』(웨일북)는 문재인 대통령이 읽은 책으로 SNS 채널들에 바이럴되며 크게 관심을 끌었다. 밀레니얼 세대가 드디어 산업 현장으로 유입되고 소비력을 갖춘 경제 인구로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사고와 감정과 습속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책들(다수는 경제·경영서들)이 출간된 것이다. 한편 2019년에도 꾸준히 출간된 ‘기술 변화’에 대한 도서들 역시 이 이슈와 연결시켜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포노사피엔스: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쌤앤파커스)는 기술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를 밀레니얼 세대들의 습속과 연결해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켰고 이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듯하지만 결국은 같은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는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부키), 『생각을 빼앗긴 세계』(반비), 나아가 『다시 책으로』(어크로스) 등의 책들도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 『정리하는 뇌』(와이즈베리)는 수년 전 출간된 책이지만 유튜버 ‘자청’이 소개하면서 결국 출간된 해보다 2019년에 훨씬 더 많이 읽히고 알려진 책이 되었다. 이 외에 ‘기술’이라는 주제를 다룬 2019년의 인문·사회 도서 중 가장 많이 판매되고 가장 주목해야 할 도서는 단연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김영사)이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과 많이 싸워야 하는 시기, 만연한 부정적인 예측과 우려가 데이터와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근거 없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관한 우호적 태도와 데이터 및 팩트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를 동시에 설득해낸 책이라 할 수 있다. 흡사 (물리적인 세대가 아니라 문화적, 상징적 세대에 가깝겠지만) 세대 대결로도 읽히는 이 흥미진진한 경합에서 어느 쪽이 최종적으로 더 많은 독자들을 설득해낼지 주목된다.

그 밖의 다양한 이슈들과 인문·사회 분야 서적의 역할

특별히 2019년의 트렌드로 묶어서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김영하, 유시민이라는 교양 분야 파워 저자들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유럽 도시 기행』(생각의길)도 선전한 한 해였다. 또 죽음과 노화에 관해 성찰하도록 돕는 책들도 계속해서 꾸준히 출간되었다. (『죽음의 에티켓』(스노우폭스북스),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티라미수 더북),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어크로스)) 페미니즘 도서들도 계속해서 분야와 깊이를 더해가며 좋은 국내서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한겨레출판),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휴머니스트) 외에도 건강서의 성격을 더한 『여자는 체력』 또 새로운 가족 형태에 대한 영감을 주는 책으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같은 책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종합해보면 2019년은 멀미가 날 정도로 혼란스럽고 강력한 이슈들 속에 기존의 통념적 기준(개념과 언어)을 돌아보게 했던 해였다. 이런 책들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더 부족한 개념과 언어로 흔들리고 갈팡질팡해야 했을까. 2019년만큼이나 강력한, 아니 그 이상으로 강력한 이슈들이 이미 휘몰아치고 있는 2020년에는 또 어떤 책들이 등장해 정확하고 안정적인 언어를 제공하며 현기증을 덜어줄 것인가. 현실에 대한 근심과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책에 크게 의지하고 기대하게 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민음사출판그룹 인문교양 브랜드 반비 편집장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