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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김연수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 (p.164)

『일곱 해의 마지막』

작가 : 김연수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20년 7월 1일
면수 : 248쪽
판형 : 133x200mm
ISBN : 9788954672771

김연수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1993년 <작가세계> 여름 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등이 있고, 장편소설로『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 있으며, 산문집으로『청춘의 문장들』,『여행할 권리』 등이 있다. 2009년 이상문학상, 2007년 황순원문학상, 2005년 대산문학상, 2003년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혁명이 끝나고 난 뒤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은 백석이 북한 문예 당국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비판받고 숙청당하기까지 삼 년여에 걸친 시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백석의 내적 고뇌를 섬세하게 되살린 작품이다. 백석의 실제 삶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그러나 북한에서 사회주의 문학인으로 활동했던 백석의 면모를 다면적으로 되살리려는 시도와는 거리가 멀다. 소설 속에서 ‘사회주의 시인’ 백석의 면모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북한에서 백석이 창작했던 시들은 “체제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거짓과 위장의 텍스트”이며 “문학적 진실과 진심은 다른 곳에 있으리라 단정하는 태도”로부터 작가가 부러 거리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
일각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백석의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연구자의 주관과 욕망의 산물임을 지적하지만 이 작품은 백석의 문학세계에 대한 엄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기에 그와 같은 주관과 욕망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건 백석의 비극적인 문학적 말년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김연수가 드러내는 ‘주관과 욕망’이다. 이 소설의 백석은, 비록 거기서 그의 삶이 엄밀하게 입증된 전기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김연수의 프리즘을 통과한 백석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보자. 『일곱 해의 마지막』이 소구하는 문학적 보편성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만약 이 소설이 다른 언어로 번역된다면, 그래서 백석이라는 한 인간의 생애와 그가 생산한 작품을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자가 이 소설을 접한다면, 그들은 이 소설에서 무엇을 읽어낼까? 그들은 한국의 독자와 비슷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비슷한 문장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될까? 아니면 백석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 독자들은 우리가 느끼는 안타까움과 비극의 정조를 공유하지 못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동구권의 독자라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운명을 겪었던 조국의 예술가들을 떠올릴 것이고 냉전기 문화 전쟁을 치렀던 서구의 독자 또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연수가 정치와 예술 사이의 오랜 적대와 대립을 드러내기 위해 백석의 삶을 차용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소련에서 일어났던 해빙의 기미를 억압하고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던 북한의 모습은 기존 냉전 체제의 역사로 온전히 회수되지 않는 한반도 분단체제의 고유한 모순을 상기시켜주거니와 그 과정에서 남과 북 양측에서 금기가 되었던 백석의 운명은 동구의 예술가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과 또 다른 역사적 개별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감상적인 서정 시인이 사회주의 국가에 의해 새로운 인간형으로 재탄생할 것을 강요받다가 자신의 문학과 함께 스러지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20세기 냉전 체제기 ‘자유 진영’의 입장을 대표하는 ‘마스터플롯’이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이 작품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시인 백석의 비극적인 운명’에는 높고 가난하고 쓸쓸함을 노래했던 백석이라는 개별적 인물의 고유성만이 아니라 억압하는 이념과 예술의 자율성 사이의 대립이라는, 주로 서방 세계의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던 20세기 냉전 체제의 정치적/예술적 문제가 어지럽게 얽혀 있다.
물론 김연수가 ‘작가의 말’에 쓰고 있듯 이 소설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행의 마음”(244쪽)을 되살려 우리를 그 마음 앞에 세워보고 싶었기 때문일 테다.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을”(246쪽) 백석에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되살아난 당신의 마음을 앞에 두고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말년을 상상하며 이렇게 서 있는 우리를 보라고, 나직하게 어루만지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이었을 테다. 그 점에 있어 이 작품이 거둔 성과는 값진 것이다. 서른 개가 넘는 짤막한 단편(斷片)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치고는 확실히 소략한 분량이지만 선택과 집중, 생략과 조명을 자유자재로 구가하는 김연수의 장인적 솜씨는 우리를 어느새 엄혹한 운명과 그 앞에서 고뇌하는 한 시인의 곁으로 조용히 데려간다.
하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되살려낸 백석의 내면만이 아니라 그 내면의 그 고뇌를 구성하는 사회적 압력과 갈등의 성격에 있다는 점은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 압력과 갈등은 소설 속에서 백석의 불우한 운명을 추동하는 직접적 요인으로 작동하거니와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논하는 데 있어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적대의 양상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혹은 ‘주체 문예’의 허구와 기만을 폭로하는 것으로 드러나지만 단지 ‘창작방법론’에 국한된 문제로 보는 건 타당하지 않다. 그 창작방법론조차 당시의 북한이 새롭게 창조해야 할 것을 주문한 인간과 사회의 특성으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 한영인 Han Young-in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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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상숙, 「분단 후 백석을 이해하기 위하여」, 『가난한 그대의 빛나는 마음』, 삼인, 2020, 4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