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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 (p. 51)

『일의 기쁨과 슬픔』

작가 : 장류진
출판사 : 창비
출간일 : 2019년 10월 25일
면수 : 236쪽
판형 : 145x210mm
ISBN : 9788936438036

장류진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제11회 젊은작가상, 제7회 심훈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센스의 혁명

 

장류진의 소설은 말한다.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잘 살겠습니다」, 28쪽) 이 세계는 정확히 움직인다. 주는 만큼 돌려받는 곳. 딱 한 만큼 대가를 치르는 곳.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에누리 없이 계산되는 곳. 합리적인 인간을 상정하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삼아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장류진의 소설에 기본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세계다. 이 철저한 시스템 안에서 생존해야 하는 개인은 일, 사랑, 돈, 취미, 인간관계, 젠더 폭력을 고민하면서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성차별적인 회사 구조에서 입사동기와 결혼한 여성 직장인(「잘 살겠습니다」),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며 ‘워라벨’(워크-라이프 밸런스)을 찾는 서른셋의 사원(「일의 기쁨과 슬픔」), 백화점 매니저로 일하며 처음으로 집을 마련한 무자녀 기혼 여성(「도움의 손길」)이 그런 이들이다. 이 작고 평범한 개인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복잡한 그물망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 물음에서 장류진의 첫 번째 소설집이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 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울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다. 감정에 침잠해있기보다는 가볍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이 개인들은 특별하게 빼어나지도 눈에 띄게 뒤처지지도 않는다. 이들은 대단한 환상을 품게 하는 커리어 우먼이나 거대한 구조와 싸우는 정의로운 투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도 아니다. 다만 노동과 일상의 경계를 명민하게 알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이 시대 가장 보통의 우리들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생존과 생활에 대한 탁월한 감각, 삶의 질과 행복을 지키는 센스를 겸비한 장류진 소설의 산뜻하고 담백한 개인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문학의 새로운 얼굴이다.​

장류진의 첫 번째 소설집에서 기본값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20-30대 직장인이다. 일, 사랑, 여가로 삶의 밸런스를 맞추어나가는 이 보통의 직장인들은 한국 청년으로서의 생애주기를 치열하고 성실하게 통과해나간다. 여러 소설에 등장하는 이 청년들을 하나로 이어,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한 단계씩 레벨업하는 젊은 직장인의 성장서사로 읽어본다면 어떨까. (…)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는 바야흐로 본격적인 직장생활이 펼쳐진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소규모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이 소설은 한국문학사에서 ‘회사소설’ 장르를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놓았다. 이 소설이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는 자본주의 회사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부조리한 구조적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효율적인 작업 진행을 공유하기 위한 스크럼 프로젝트가 회사 대표의 중언부언으로 매일의 시간 허비가 되고, 수평적인 업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영어 이름 체계가 오히려 위계 있는 직급체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문제는 갑질이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클래식 공연 공지를 가장 먼저 선점하려는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월급 대신 카드 포인트를 받게 된 카드회사 직원의 이야기가 그 핵심이다. 평등하고 세련된 동시대 감각을 따라가겠다는 실속 없는 의지를 비웃듯, 가장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위계 구조는 굳건히 잔존하고 있다. 이 시차의 여파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을’의 역할을 벗어날 수 없는 노동자 개인의 몫인 것이다.

그러나 장류진의 소설은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스템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질문하며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중고거래 앱 서비스를 통해 포인트를 돈으로 바꾸는 카드회사 직원의 대응은 자못 신선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을’로 살아가야 하는 모멸감에 울다가,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52쪽)라고 생각을 고쳐먹고는, 직거래로 포인트를 돈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곤경을 극복한다. 이것은 삭막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최선의 밸런스를 찾을 줄 아는 개인의 기민한 응전이자 생존을 위한 센스다.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51쪽)라는 그녀의 질문에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던 주인공 역시 시스템에 맞서 싸우면서 바위에 부서지는 계란이 되지 않는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를 조성진 리사이틀 티켓과 홍콩행 비행기 티켓으로 바꾸며 “조금 비싼가 싶었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63쪽)라는 ‘나’의 즐거운 마음으로 장식된다. 이것은 월급의 소중함을 모른 척하지 않고 여가의 행복을 지킬 줄 아는 이 산뜻하고 담백한 마음이다. 그러니까 장류진의 소설은 4대 보험과 퇴직금의 푹신함도, 적금으로 떠날 이탈리아 휴가의 기쁨도, 조성진 홍콩 리사이틀의 황홀함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고루 품는 이 소설은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장 보통의 삶에 대한 긍정이자,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51쪽)라는 질문에 남몰래 고개를 끄덕일 이 시대의 독자들을 향한 위로다.

 

글: 인아영 In A-young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