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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는 애초에 배제와 포섭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거제로 이주한 정규직들이 회사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족을 형성함으로써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결혼과 출산을 통해 직계가족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공업 가족은 하청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여성들과 딸들의 공간을 결혼 생활의 영역에 한정 지었다. 무엇보다도 중공업 가족은 그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그 약점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 (p. 113)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작가 : 양승훈
출판사 : 오월의봄
출간일 : 2019년 1월 24일
면수 : 332쪽
판형 : 140x210mm
ISBN : 9791187373797

양승훈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기초 사회통계학과 데이터분석을 가르친다. 정치학과 문화연구·인류학을 공부했다. 문과 출신으로 어쩌다 취업하게 된 조선소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 정책과 산업도시 그리고 엔지니어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한다.

동남권 산업도시는 몰락하는가?

 

이 책은 동남권 산업도시 중에서도 조선 산업도시 거제의 빛과 그림자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점에서 산업도시에 관한 기존의 저작들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장점을 드러낸다.
첫째로, 특정 산업에 대한 심층적 이해에 기초해 있다. 고용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거제시를 먹여 살려온 조선산업의 기술적 특성, 경영 전략, 산업 현장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이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거제의 위기가 조선 경기의 불황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해양플랜트 사업의 확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은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차이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늘면 한국 조선산업이 회복될 것이라든지, 그렇기 때문에 일본처럼 생산 능력을 축소해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낙관론을 경계한다. 이 책은 조선산업 위기의 원인으로 설계 엔지니어링 능력 부족, 사내하청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인력 구성 등 내부적 취약성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전문가만이 발휘할 수 있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둘째로, 조선산업을 담당하는 주요 행위자들에 대한 상세한 이해와 따뜻한 공감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조선소에서 시작되는 아침 정경과 업무 흐름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다. 이 역시 산업 현장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참여 관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편, 엔지니어 집단이 수도권 일류대학 출신과 동남권 지방대학 출신으로 구분되고 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양상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달리 말해서, 동일한 엔지니어 집단에 속하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업체에 취직하게 된 동기, 위기 시 대응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하위 집단 간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설득력이 크다.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노조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따듯한 시선도 돋보인다.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노조를 통해 자신의 권익을 실현했는데, 갑자기 ‘귀족 노조’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 노동자들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분석이다. “이들은 서울을 택하지 않고도,”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땀 흘리며 성실하게 일하면,”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고용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었던 셈이다”(23~24쪽).
셋째로, 이 책에서는 산업과 도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설명되고 있다. 기존의 저작들은 산업도시를 연구하면서도 산업 자체만을 다루거나, 도시 자체에만 치중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둘 중 어느 하나에 치중하면서 ‘산업’ 도시를 서술하거나, 산업 ‘도시’를 분석하는 데 그치는 한계를 보이기 쉬웠다. 하지만 양 교수의 저서는 조선 산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뿐 아니라 거제라는 지역, 즉 옥포, 장승포, 아주동 등으로 구성되는 주거 공간의 서열이 산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생하게 분석한다. 또한 가치사슬, 계층, 생활세계 등의 주요 이슈를 망라한 산업도시 분석의 모범을 보여준다. 요컨대, 이 책은 거제라는 사례 연구를 통해 산업과 지역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산업 도시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주고 있다.
넷째로, 이와 관련하여 중공업 ‘가족’의 중의적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이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땐뽀걸즈〉에 나오는 남성 생계부양자, 전업 주부들의 네트워크, 딸들의 취업 이야기는 산업도시 노동자 ‘가족’의 전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중공업 가족의 또 다른 의미는 ‘대우 가족’, ‘삼성 가족’에 있다. 회사라는 또 다른 가족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의 취업, 승진, 경쟁, 고뇌, 이직 등의 생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소 사람들이 퇴근 후에도 작업복을 선호하는 자부심, 회사 동료들끼리는 연장근로, 회식, 특근 등으로 하루 3끼를 같이 하는 반면, 정작 자신의 식구들과는 일주일에 한 번도 함께 식사를 하기 어려운 현실은 회사 공동체가 ‘가족’으로 지칭되는 데 무리가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회사가 위기에 처하고 고용조정이 진행될 때 끈끈했던 회사 ‘가족’이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드는 대목이다.
다섯째로, 이 책의 장점을 한 가지만 더 언급한다면 산업도시 거제의 위기만이 아니라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거제시가 위기에 처한 이유를 조선산업을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저자는 앞서 조선산업의 위기를 경험했던 유럽과 일본의 산업도시 사례를 검토한 후, 설계 엔지니어링, 조선 기자재의 기술역량을 강화하는 혁신적 중소기업 육성, 여성 취업의 확대, 동남권 대학 네트워크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제안은 저자가 위기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책임 있게 고민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글: 조형제 Jo Hyung-je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