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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트, 그리고 퀼트주민현

『킬트, 그리고 퀼트』

작가 : 주민현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20년 3월 10일
면수 : 148쪽
판형 : 130x224mm
ISBN : 9788954670951

주민현

198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7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20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하지, 돌이켜 하지

 

주민현의 사유 안에서, 같은 공간에 더블로서 놓여 있는 둘이란 서로 동떨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가 관철하려는 더블은 거울에 반사된 나르시시즘적인 더블도 아니며, 동일한 욕망을 추구하는 경쟁자로서 질투와 원한을 불러일으키는 더블도 아니다. 주민현의 더블은 동일화라는 완전성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메리 셸리의 빅터가 끝내 응시하지 못했던 괴물로서의 내면도 아니다. 시인의 더블은 타자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타자에 대한 ‘따라 하기’를 실천해내는 더블이다. 주민현의 더블은 함께 있음을 실천하는 더블, 그러면서도 그러한 함께 있음을 대가로 타자에게 동일성을 요구하지 않는 더블이다. 나는 글의 서두에서 연대의식이라는 말을 꺼내긴 하였지만, 나는 시인이 수행하는 따라 하기가 강한 연대감을 염두에 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하였듯이, 더블이 투영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주어진 한정된 공간에서, 남자들의 보호, 관리 아래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자들의 사회적 존재는 이렇게 제한된 공간 안에서 보호, 관리를 받으며 그 여자들 나름으로 살아남으려고 머리 쓰고 애쓴 결과로 이룩된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그녀의 자아는 찢겨 두 갈래로 갈라진다. (……)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감시하도록 교육받고 설득 당해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는 한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이렇게 감시하는 부분과 감시 당하는 부분이라는,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두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 여자 자신 속의 감시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감시 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그녀 자신을 대상으로 바꿔놓는다.[1]

존 버거는 근세 유럽의 누드화에 담긴 남성의 폭력적인 시선을 폭로하면서, 여성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갈래의 자아 혹은 시선에 관하여 말한다. 여성의 자아는 자신을 감시하는 나와 자기 시선에 감시 당하는 나로 구분된다. 이와 같은 ‘찢긴 자아’는 남성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일찌감치 교육하고 설득한 결과이다. 존 버거는 이런 예를 든다. “방을 가로질러갈 때, 또는 아버지가 사망하여 울 때도 그녀는 걸어가거나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이 보여주는 예시는 더욱 탁월하다. “볼품없는 남자에게 어느 여자가 가슴을 줄까,/ 하지만 나는 그런 남자만을 사랑했네”라는 발화는 무엇을 폭로하나? ‘순수한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에게 자기보다 못한 남자를 만나도록 강요한다. 외모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같은 말로 사회는 여성을 길들여왔다. “꿈에서 만난 라라 아줌마는/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지/ 아침엔 마당을 정리하고 저녁엔 상을 차리는/ 가족의 옷 재봉이 기쁨이자 취미인/ 그를 금세 따르기 시작한 내가/ 꼬리를 세게 휘두르는 개가 되어 눈을”(「세계과자할인점」) 뜨는 장면에서, 시인은 라라 아줌마나 ‘나’를 향하여 생각 없이 고정된 성 역할을 수행하는 부역자라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는다. 거듭 말하건대 그것은 참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주민현의 함께 있음은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이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그가 시 속에서 관철하는 더블은 여성의 분열된 자아에 대한 가장 전복적인 대응물이다. 남성 이데올로기 속 여성 자아는 1)본래 하나였던 것의 분열이고 2)감시하거나 감시 당하는 시선이므로 위계를 가지기 때문에 3)주체의 인지를 왜곡하고 억압한다. 반면 주민현의 더블은 1)본래 동떨어진 둘의 함께 있음이고 2)감시와 위계가 없는 교감이기에 3)두 주체의 인지를 회복하고 갱신한다. 억압된 여성으로 살아온 주체의 응시는 남성이 시선 권력을 통하여 세계를 대상화하는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주민현의 주체는 남성이 여성에게 심어둔 찢긴 자아와 ‘운집/분열’ ‘동등/위계’ ‘갱신/왜곡’ 등의 요소로 대응하면서,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둘’, 권력 차이 없이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둘’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글: 김상혁 Kim Sang-hyuk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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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최민 옮김, 열화당, 2012, 54~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