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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이길보라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가봤고, 먹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먹어봤다. 만져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 만져봤고,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직접 느꼈다. 그건 엄마, 아빠의 방식이었다. 입술 대신 손과 표정으로 말하는 부모는 몸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했다. 모르니까 일단 해보고 가보고 만져보고 느껴보는 것. 자연스레 내 삶의 방식도 그리되었다. (p.8)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작가 : 이길보라 (지은이)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20년 8월 18일
면수 : 276쪽
판형 : 133x200mm
ISBN : 9788954673617

이길보라

글을 쓰고 영화를 찍는 사람. 농인 부모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을 만들었다. 지은 책으로 『길은 학교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 등이 있다.

돈을 버려도, 시간을 버려도, 괜찮아 경험

 

이 책은 낯선 세계와 맞닥뜨린 한 젊은 여성 창작자의 시선이 담긴 작업 일지이자, 한 사람이 자신의 내부에 쌓인 겹겹의 편견을 마주하고 깨뜨려 나가는 성장기다. 독립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이자 ‘로드스쿨러(Road Schooler)’ 이길보라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유학생활을 통해 새롭게 얻은 배움과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즉 ‘코다(Coda)’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부모의 수화언어와 세상의 음성언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온 그는 그렇게 사람과 세상의 경계를 보고 느끼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사회가 정한 기준을 고분고분 따르는 삶을 거부했던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아시아 지역 배낭여행을 한 후 학교 밖 공동체에서 배움을 이어간 기록을 〈로드스쿨러〉>라는 다큐멘터리로, 농인 부모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반짝이는 박수 소리〉라는 다큐와 책으로 담아낸 일련의 활동도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의 ‘정상성’과 그 기준에 의문을 가졌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영화제작 환경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지속한다는 건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새로운 곳에서 작업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렇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필름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날 마음을 품었지만, 여전히 유학비와 체류비는 해결하기 힘든 고민거리였다. 그때 아버지가 던진 한마디는 그 모든 망설임을 떨치게 만든다. “보라야, 괜찮아, 경험.”
농인 부모가 평생 몸으로 체득해온 말이었다. 부모의 삶이 담긴 그 말을 발판 삼아 이길보라는 암스테르담 필름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고, 거기서 만난 젊은 예술가들과 암스테르담의 문화는 청년 이길보라에게 전혀 새로운 모험과 시선들을 선사한다. 들리지 않았기에 직접 부딪혀 세상을 감각해야 했던 부모처럼, 이길보라 또한 낯선 세계를 몸으로 겪어낸다. 이곳에도 구분짓기와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결국 중요한 건 다름을 포용하려는 시도이며, 그 시도를 존중하는 태도다. 그건 ‘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을 경험이다.

——

 

이길보라의 글을 읽고 나면 새삼 ‘청년’이라는 단어가 그간 얼마나 오염되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뻗어 나온 곳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태도, 때로는 두리번거리고 때로는 온몸으로 부딪쳐 깨닫고 배운 것들을 널리 나누려는 건강한 마음. 나는 그로부터 청년의 정의를 다시 내린다. (…) 이길보라는 위험천만한 빗길에 미끄러지고 넘어질지라도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고 휘청거리면서나마 다시 일어나 이 길을 걸어나갈 수 있다고 기어코 믿게 만든다.

 

글: 장류진 Jang Ryu-jin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