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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숨조해진

『환한 숨』

작가 : 조해진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출간일 : 2021년 3월 9일
면수 : 316쪽
판형 : 120x188mm
ISBN : 9788932038230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천사들의 도시』,『빛의 호위』, 장편소설『아무도 보지 못한 숲』,『단순한 진심』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연루와 비밀

 

노동하는 영혼들[1]
조해진 소설들 속 ‘일‧노동’의 장면이 연결‧연루‧관계 등으로 돌파되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노동’은 정치경제학이나 사회과학의 특별한 주제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일‧노동은 인간이 세계를 디자인하고 삶을 영위하는 방식과 늘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일‧노동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범박하지만 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단, 이 세계를 조건 지어 온 자본주의 시스템에 일‧노동의 성격이 직접적으로 구속되어 있기에, 일‧노동을 자본의 문제와 무관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지금 조해진 소설이 보여주는 일‧노동의 장면은 오늘날 삶의 핵심을 적중한다. 우선은 연령, 성, 장애·결혼 여부, 교육 정도, 계급, 스펙 등이 만드는 무수한 노동의 분할이나 비참을 환기시킨다. 나이 든 비혼 여성의 일과 삶의 리얼리티(「흩어지는 구름」,「환한 나무 꼭대기」), 시대가 달라져도 변함없는 공장노동과 산업재해(「파종하는 밤」,「하나의 숨」), 시스템이 만드는 노동의 분할과 적대들(「경계선 사이로」) 등은 오늘날 일‧노동-삶의 현장을 곡진하고 밀도높게 보여준다. 이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조해진 소설은 어디에서건 기어이 존재와 삶의 존엄을 환기시키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우선「파종하는 밤」은, 실제 1980년대 공장노동자 수은중독 사망사건을 모티프로 한 소설이다. 성장·발전주의 시대의 여성·미성년 노동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여전히 많다. 다큐멘터리·르포가 아닌 방식으로 상상하기 쉽지 않은 제재인 것도 같다. 하지만 작가가 이것을 돌파하는 것 역시 연결‧연루‧관계의 방법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출신의 주인공은 공장에서 수은중독으로 죽어간 소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자 내내 마음을 먹고 있다. 한편 그녀의 이웃에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억측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남자가 산다. 그녀에게도 장애 여부를 고민케 하는 아이가 있다. 그녀와 남편은 젊은 날의 꿈을 반납하고 고단한 생활인이 되어버렸다.
즉, 그녀에게 수은중독 사망 소년들의 죽음이란, 취약함으로 몰리는 자신의 지점들과 공명하는 현실의 심연이다. 소설에서 소년의 이야기는 끝끝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공장터에는 요양원이 들어선다고 한다. 공장터에 들어설 요양원은 한 장소의 기억을 공유하며 이어질 미래다. 이것은 이어져야 할 이야기들의 비유다. 그렇다면 결말의 암시는 실패나 무기력이 아니다. 자족적 연민이나 위로보다 힘이 센 것은, 기어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무엇이 분할시키는가
한편, 지금 일‧노동을 소재로 서사화한다는 것은 오늘날 세계를 꿰뚫는 시선 없이 꽤 곤혹스러우리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점점 더 노동자이면서 고객이면서 자본가(자기사업자)인 분열적 정체성을 동시에 부여 받는다. 기술의 발달과 노동의 종말이 자주 상상되지만, 기술로 해결할 수 없고 외주화할 수 없는 노동의 자리도 무수히 많다. 노동할 수 있음은 시민의 징표처럼 여겨진다. 여전히 저항과 투쟁으로 가까스로 얻어내야 할 권리의 문제도 많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시민권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또 다른 오랜 과제이기도 하다. 전통적 의미의 인간 노동 뿐 아니라 비인간-동물의 (인간을 위한) 노동과 수탈까지 포함하여, 노동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이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주제다.
이런 최근의 사정을 생각할 때, 특히「하나의 숨」과「경계선 사이로」는 일‧노동 서사의 다른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잠시 이런 질문을 해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모두가 대학생이 되는 것일까. 힘들고 어렵다는 일은 누가 하고 있나. 산재와 그것을 둘러싼 무책임한 공방은 왜 자주 망각될까. 이주자, 청소년, 주부, 노인, 장애인, 취약계층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계약직, 임시직 같은 일의 성격은, 우리 삶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을까.「하나의 숨」은 이것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떠올리지 않고 이 소설을 읽을 수는 없다.
나아가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1년 재계약에 삶을 맡겨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돌볼 수 있을까. 짧은 마주침 속에서도 정서‧정동적 관계는 생겨버리는데, 이것은 계약서에 의해 종료될 수 있을까. 누군가와 함께 하고 도와야 할 때조차 각자의 자격(계약 조건, 정규직)을 검열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무엇일까. 우리를 구속하는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글 : 김미정 Kim Mi-jeong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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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코 베라르디의 책 『노동하는 영혼-소외에서 자율로』(갈무리, 2012)에서 빌려온 소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