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과학·기술

밀레니얼 세대가 온다!

2019년 과학·기술 장르에서 주목할 만한 첫 번째 동향은 아마 역주행일 것이다. 2015년에 출간된 대니얼 J. 레비틴의 『정리하는 뇌』(와이즈베리)와 2007년 출간된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사이언스북스)가 6월 중순 갑자기 베스트셀러 20위권 안으로 진입했고, 2008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던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갤리온)와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의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흐름출판)가 급하게 재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목록 안으로 뒤쫓아 들어왔다. 이 역주행의 원인은 자기 계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유튜버 ‘라이프해커 자청’의 영상 ‘오타쿠 흙수저의 인생을 연봉 10억으로 바꿔준 5권의 심리학 책’이었다. ‘심리학’ 타이틀을 달고는 있지만 주로 뇌과학, 진화 심리학, 인지 과학을 다루는 책들을 소개한 이 영상은 단숨에 6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유튜브를 시작한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된 유튜버를 출판계의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정리하는 뇌』는 한 달 만에 2만 부가 팔리고, 『욕망의 진화』는 전년도에 비해 15배 이상 팔린 이 역주행 현상은 기존 미디어를 믿지 않고 SNS를 믿으며, 연예인보다 1인 유튜버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은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성향이 과학 기술 장르에도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동안 출판계에서는 과학 기술 장르의 주요 독자층이 전문직 종사자, 교사 등 중·장년층과 청소년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여겨왔지만, 과학 기술 장르의 역주행 현상은 이와 같은 독자 구성이 크게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거의 모든 업계에서 이미 소비의 주체가 된 밀레니얼 세대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동향은 이것만이 아니다. 식물 도서의 잔잔한 붐 역시 주목해야 한다.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 식물 이야기’를 부제로 단 『식물의 책』(책읽는수요일)이 하반기에 출간되어 조용히 화제를 모았다. 연중 내내 『식물혁명』(동아엠앤비), 『식물의 죽살이』(지성사), 『실내식물 사람을 살린다』(중앙생활사), 『재미있는 식물 산책 도감』(성안북스), 『식물 예찬』(더난출판), 『다육식물도감』(유나), 『식물학자의 식탁』(현대지성),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사람과나무사이), 『컨테이너에 들어간 식물학자』(바이오스펙테이터) 등 식물을 주제로 한 책들이 출간되었다. 2017∼2018년부터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생활 패턴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화초 세대’로서의 특징, 즉 반려 식물과 실내 원예에 대한 높은 관심이 과학 출판 장르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 주는 동향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참여형 소비,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 추구 같은 밀레니얼 세대만의 또 다른 소비 특징들이 과학 출판 장르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기율표 150년, 달 착륙 50년

2019년은 과학·기술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기념할 수 있는 해이기도 했다. 우선 2019년은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든 지 150년 되는 해였다. 국제연합(UN)은 2019년을 ‘국제 주기율표의 해’로 지정했고, 유네스코와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 같은 국제기구들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화학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우주 삼라만상을 이루는 원소와 원자들의 관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주기율표의 존재는 화학자에서부터 생물학자와 천문학자들까지 크든 작든 물질을 다루는 과학자들이라면 반드시 도움을 받는 과학의 가장 기초적인 지도 중 하나이다. 모처럼 맞이한 화학 관련 이벤트 덕분에 2019년은 화학 관련 교양 도서가 나름 풍년을 이룬 해였다. 한양대학교 김민경 교수의 『우리집에 화학자가 산다』(휴머니스트), 씨에지에양 네오제네스 대표의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지식너머), 독일의 인기 유튜버 화학자 마이티 응우옌 킴의 『세상은 온통 화학이야』(한국경제신문) 같은 일상생활을 화학으로 해석한 책들에서, 전창림 홍익대 교수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두 번째 이야기』(어바웃어북), 『화학, 인문과 첨단을 품다』(한국문학사) 같은 스테디셀러의 후속작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물리 화학자의 화학 입문서인 피터 앳킨스의 『화학이란 무엇인가』(사이언스북스) 같은 책들이 출간되어 서점의 화학 서가를 새롭게 채웠다. 서점들도 주기율표를 모티프로 한 머그잔, 테이블 매트 등의 굿즈를 연중 기획해 판촉에 나서 국제 주기율표의 해다운 행보를 보였다.

또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달 탐사를 비롯해 다양한 천문학, 우주 과학 관련 도서들이 출간되었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인류 최초 달 착륙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 때 아폴로 11호의 사령선에서 홀로 심우주를 들여다보고 있던 마이클 콜린스의 ‘우주 에세이’ 『달로 가는 길』(사월의책), 『플라이 투 더 문』(뜨인돌출판사)이 번역·출간되어 달 탐사 우주인의 육성을 들려주었고, 다양한 사진과 자료, 희귀 문서 등을 바탕으로 한 로드 파일 『미션 투 더 문』(영진닷컴)이 출간되어 달 탐사의 역사를 생생하게 재구성하였다. 또 SF 작가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고호관이 ‘달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우주로 가는 문 달』(마인드빌딩)을 펴냈고, 『미국과 소련의 우주 탐험 대결』(풀빛), 『닐 암스트롱,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 비행사』(깊은나무), 『타다, 아폴로 11호』(너머학교) 같은 청소년 대상 도서들이 1년 내내 출간되었다. 동시에 이언 스튜어트의 『우주를 계산하다』(흐름출판), 브라이언 콕스의 『경이로운 우주』(해나무),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 『명왕성 연대기』(사이언스북스), 『스타 토크』(사이언스북스), 『웰컴 투 더 유니버스』(바다출판사), 폴 데이비스의 『침묵하는 우주』(사이언스북스),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시모프의 천문학 입문』(전파과학사), 빌 나이 등의 『NASA 행성을 기록하다』(영진닷컴), 『NASA 지구와 우주를 기록하다』(영진닷컴), 『우주선은 어떻게 비행하는가』(푸른길)처럼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과학자들의 우주 관련 도서들도 다수 출간되어 달 착륙 50주년 이벤트에 끌려 서점을 찾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서울대 우종학 교수의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김영사), 한국천문연구원 황정아 박사의 『우주 날씨 이야기』(플루토), 박석재 전 한국천문연구원 원장의 『하늘의 역사』(동아엠앤비) 같은 국내 연구자들의 수준 높은 교양서들도 출간되어 주목을 받았는데, 블랙홀이나 우주 날씨 같은 새로운 주제와 학계의 최신 성과를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소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드디어 시간

기초 과학인 물리학 분야에서는 물리학의 최대 난제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제로 한 책들이 출간되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현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교 이론 물리학 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6년 출간된 『모든 순간의 물리학』(쌤앤파커스)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카를로 로벨리의 신작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쌤앤파커스)가 카를로 로벨리의 방한에 맞춰 4월 출간되어, 시간과 관련된 이론 물리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6월에는 로벨리와 다른 관점에서 시간 문제를 다룬,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물리학과 교수인 리처드 뮬러의 『나우: 시간의 물리학』(바다출판사)이 출간되었고, 과학 저술가로 이름 높은 제임스 글릭이 시간 여행을 주제로 쓴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동아시아)이 5월 출간되었다. 이 책들의 출간과 함께 여러 기관에서 시간을 주제로 한 강연과 북콘서트가 개최되어 시간이라는 난해한 문제에 대한 국내 독자들의 이해를 심화시켜 주었다.

생물학 분야에서도 시간의 힘에 대해 성찰한 고전들이 출간되어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바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이 진화론 전문 연구자들에 의해 번역·출간된 것이다. 생명의 진화에 대한 다윈의 아이디어는 본질적으로 간단하다. 번식과 죽음의 과정이 오랜 시간 반복되다 보면 어떤 종은 번성하고, 다른 종은 멸절하는 식으로 자연적 선택이 일어나 종의 분화, 나아가 생명의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생명 진화는 시간의 산물이다. 이러한 다윈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고전이 『종의 기원』이다. 찰스 다윈 탄생 16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10주년을 맞아 국내 진화학계의 원로 석학인 신현철 순천향대학교 교수와 중견 연구자인 장대익 서울대학교 교수가 각각 『종의 기원』 번역본을 출간했는데, 모두 다윈의 초판본을 번역해 다윈 사상의 원래 모습을 원형 그대로 되살려내는 데 초점을 뒀다. 그간 한국 진화학계가 축적해 온 성과가 응축된 이 번역본들은 진화론 공부를 시작하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출발점이자 기준점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만화로 배우는 과학·기술

밀레니얼 세대의 과학 기술 장르 유입의 신호로도 볼 수 있는 동향이 하나 더 있다. 학습 만화의 성인판이라고 할 만한 교양 만화 시리즈의 출간이다. 국내 작품은 물론이고 해외 교양 만화 가운데 우수한 작품을 골라 출간하는 ‘한빛비즈 교양툰’ 시리즈가 과학 기술 장르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만화로 배우는 성차별의 역사』,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 『만화로 배우는 와인의 역사』 같은 책들이 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이중에서 김도윤 작가의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는 무수한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화를 인용한 패러디와 인터넷 용어, 웹툰의 문법을 교양 만화에 적극 채용해 과학 교양 만화의 신경지를 개척함으로써 신조어와 B급 문화를 적극 활용하는 밀레니얼 세대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기획한 청소년을 위한 뇌과학 학습 만화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전 3권, 아울북)도 함께 주목할 만하다.

이외에도 리처드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동아시아),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의 『관계의 과학』(동아시아),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김영사) 같은 정통 과학서들이 출간되었고, 전치형 카이스트 교수의 『사람의 자리』(이음), 『미래는 오지 않는다』(홍성욱 공저, 문학과지성사), 강양구 과학 기자의 『과학의 품격』(사이언스북스)과 같이 넓게는 과학·기술학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국내 연구자들, 과학 저널리스트들의 과학 비평서들이 다수 출간되어 과학·기술 장르의 다양성을 넓혀 주었다.

사이언스북스 주간 노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