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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레인은소홀, 노인경

나루가 레인 끝에 섰다. 앞으로 몇 번이고 왕복해야 할 길이 보였다. 어떤 날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떤 날은 영 지루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 나루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들은 전부 물속에 있었다. - 본문에서

『5번 레인』

작가 : 은소홀, 노인경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20년 9월 14일
면수 : 240쪽
판형 : 154x220mm
ISBN : 9788954674638

은소홀, 노인경

은소홀 (글) 『5번 레인』으로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노인경 (그림) 『책청소부 소소』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2012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었고,『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로 2013 BIB 황금사과상과 스위스 Petits momes상을 수상했다. 쓰고 그린 책으로『사랑해 아니요군』이 있으며, 그린 책으로『소풍 가기 좋은 날』,『고양이야, 미안해!』등이 있다.

두근거리다

 

『5번 레인』은 수영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것만으로도 솔깃하다. 수영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속의 아이들은 어떤 일을 겪고 무슨 생각을 할까. 첫 장에서부터 끼쳐 오는 물 냄새를 따라 수영장에 도착한 뒤 아이들의 움직임을 따라 물을 헤치고 나아가면 우리는 투명하고 단단한 아이들의 성장기와 만나게 된다. 자신의 길을 직접 선택하고 그 길을 향해 전력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부시고, 여름의 푸른빛 아래 놓인 우정과 사랑, 두근거림과 설렘의 장면들은 맑고 청량하다.
이 작품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현실에 밀착해 그리고 있다. 『5번 레인』 속 아이들은 자기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동작을 하기 위해 애쓴다. 옆 레인의 아이를 이겨야 하는 한편 자신의 기록도 깨야 한다. 연습할 때도 경기에 나가서도 자신의 움직임이 수치화되고 등수화되는 것을 이겨 내고 버텨야 한다. 재미있어서 혹은 재능 있어서 시작한 수영을 때로는 버거운 짐처럼 느끼기도 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제 몸과 마음의 한계를 맞닥뜨리면서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길이 맞는지, 내가 해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주인공 나루도 어느 순간 자신의 한계 앞에 선다. 자신보다 팔이긴 아이를 만나며 몸의 한계에, 자신보다 늘 좋은 기록을 내는 아이의 수영복을 훔침으로써 마음의 한계에 다다르는 것이다. 마음 깊은 곳 어두운 심연을 마주하며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나서야 나루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피하려고 했던 질문,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질문을. 나루는 언니가 수영을 그만두고 다이빙으로 종목을 바꾼 것에 늘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다. 달리던 길을 이탈한 자는 패배자며 도망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자신은 가지 않을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초희를 더 이상 앞지를 수 없게 되자, 나루의 견고한 성에 드디어 균열이 생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내면으로 향하지 못하고 초희가 입은 수영복까지만 닿는다. 자신이 우승하지 못하는 이유로 변명 하나를 찾은 것이다. 라이벌 구도의 이야기에서 상대방의 강력한 무기를 훔치는 행동은 다소 예측이 가능함에도 뻔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나루 역시 반짝거리는 수영복에 어떤 힘도 없을 것임을 이미 의심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나루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늦추기 위해 잠시 피할 곳이 필요했던 거다. 이런 망설임과 변명이 나루 캐릭터에 생동감을 더한다.
새가 둥지에서 떠밀리며 나는 법을 익히듯, ‘왜’ 수영을 하느냐는 질문의 끝에서 나루는 변명의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우리의 생은 결국 자신과의 사투임을, 이기는 법과 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결국은 같은 것임을, 비상할지 추락할지는 스스로 선택하기에 달렸음을 나루는 자기 몸과 마음으로 알아낸다. 그리고 순수한 열망을 향해 건강하게 나아간다. 작가는 아이들이 세계와 싸우며 거대한 모험을 하는 이야기 대신 저마다의 빛과 그림자를 통과하며 자신의 터치패드에 정정당당하게 도달하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이토록 현실적이며 촘촘한 시선이 이 작품을 반짝거리게 한다.
나루의 언니 버들이의 꿈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재건되었으며, 태양이는 남들보다 한 걸음 늦게 이 길에 들어섰지만 매 순간 자신이 열어야 할 문을 열 각오가 되어 있다. 담백하고도 단단한 우정을 보여 주는 승남이는 ‘5 대 5’라는 마음의 갈림길 앞에서 신중하게 진로를 고민 중이다. 부적이 없어도 자신의 힘을 믿고 경기에 임하며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 내는 초희까지, 같은 목표로 수영장에 모였으나 각자 다른 동기를 가진 아이들의 면면이 생생하고 조화롭다. 초희와 나루가 나란히 4번, 5번 레인에 서고 휘슬이 울리자 동시에, 드디어 제대로 날아오르는 장면에 이르렀을 때 귀가 따가울 정도로 파이팅을 외쳐 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그 덕분이다.
살면서 자신의 심연을 솔직하게 마주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자신만의 두근거림을 발견하고, 무언가에 온 힘을 다해 보는 경험은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욕망이 아닌 부모의 욕망, 세상이 제시한 욕망을 향해 달리고 있다. 달리고 싶은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왜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한 존재가 어른이 되어서 갑자기 그것과 직면할 힘을 얻게 될 리 없다. 가까스로 도달한 결승점의 터치패드는 자신의 것이 아니며 그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다시 스타트 지점에 자신을 놓아둘 여력이 다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의심하고 친구를 의심하고 자신이 달리는 길을 의심하는 나루의 행위는 우리가 언젠가 꼭 한번 지나야 할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두고 봐. 다음번 터치패드는 내가 제일 먼저 찍을 거야.’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의 나루는 과거의 나루와 무언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아챌 수 있다.
책을 읽은 후에 아이들은 기꺼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자기만의 어떤 세계로 날아오르고 싶어질 것이다. 자신의 몸을 한 세계에 던지는 순간 왜 꼭 그래야 하는지를 질문해 낼 것이고 마땅히 자기만의 답을 찾을 것이다. 물 위로 몸을 던지는 강하고 당당한 오늘의 나루를 통해 오늘의 나를 만날 게 분명하다. 이 작품을 읽을 때면 자꾸만 귀가 열린다. 그것은 수영 경기장의 응원 소리나 몸이 수면과 마찰하며 내는 소리만이 아니다. 아주 조용하고도 강하게 심장이 뛰는 소리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런 건 25미터 레인을 전속력으로 왕복했을 때나 있는 일이라는데 참 이상하다.

 

글 : 송미경 Song Mi-kyoung
동화작가